아시아선교의 허브 “성도 모두가 선교사… 宣敎 앞서 善交”

입력 2025-07-01 03:08
싱가폴한인교회 1대 담임인 강진선 목사가 1980년 8월 싱가폴한인교회 설립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싱가포르 동쪽 창이공항에서 북서쪽으로 32㎞ 정도 떨어진 부킷판장(Bukit Panjang). 이곳엔 싱가포르 최초의 한인교회인 싱가폴한인교회(고형석 목사)가 있다. 1980년 설립된 교회는 ‘아시아 선교의 허브’로 불린다.

아시아에 복음을 심는 교회

싱가폴한인교회 외관.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교회를 찾은 건 지난 5월 25일 주일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이었다. 적도와 가까워 일 년 내내 더운 싱가포르에서도 남서 계절풍이 부는 4~5월이 가장 덥다고 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이 날 체감온도는 섭씨 40도에 육박했다.

교회가 위치한 곳은 싱가포르 대표 관광지인 마리나센터나 차이나타운, 센토사섬과는 거리가 먼 외곽이었지만 공항에서 차로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서울보다 약간 큰 728㎢ 넓이에 불과한 싱가포르의 작은 면적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5월 싱가폴한인교회 주일예배 현장.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1부 예배가 시작된 오전 9시 30분, 교회로 들어서자 아시아 선교 허브라는 소개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됐다. 예배 위원에게 건네받은 이 날 주보를 보니 목사보다 선교사 이름이 더 많이 적혀 있었다. 목회자는 담임과 부목사, 협동·교육 목사까지 6명이었는데 선교사는 파송·주후원·협동선교사까지 모두 29명으로 다섯 배나 많았다.

선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교회 곳곳에서도 묻어났다. 방마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북한을 비롯해 우리나라까지 국가별 선교 기도 제목을 적은 문패가 걸려 있었다. 4층엔 싱가포르를 거쳐 가는 한국 선교팀을 비롯해 선교사와 목회자가 묵을 수 있는 선교관도 마련돼 있었다. 교회엔 제3국 아시안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재정이 부족해 예배 장소를 구하지 못하는 작은 이민자 교회를 위해 마련한 시설이다.

교회에선 한인과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어우러져 예배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2층에 있는 본당에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1층에선 이웃 국가에서 온 20~30대 여성들이 피아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히잡을 쓴 여성도 눈에 띄었는데 모두 인접국에서 온 가사도우미라고 했다. 이날 이들은 한국 동요 ‘상어 가족’을 배우다 CCM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이어 불렀다. 바로 옆 유리창 너머론 K팝에 맞춰 춤을 배우고 있는 또 다른 이들도 있었다. 교회가 싱가포르 내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진행하는 ‘루이스(RUIS·Reaching the Unreached In Singapore)’ 사역이었다.

싱가포르 선교를 넘어 선교의 허브로

강 목사를 싱가포르 선교사로 보내는 파송예배.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교회는 초대교회 선교 중심지였던 안디옥교회를 현대적 모델로 재해석한 교회로 평가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를 믿는 비기독교 국가들로 둘러싸인 교통의 중심지이다. 그곳에 선교적 열정과 헌신을 가득 품고 설립된 교회는 현재까지 30%에 가까운 재정을 선교에 흘려보내고 있다.

싱가폴한인교회는 1980년 8월 3일 한경직 영락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동남아 선교의 허브 역할을 감당한다는 목표로 세워진다. 설립 목적이 바로 선교의 허브였다. 1대 강진선 목사를 시작으로 손중철 황창선 황재우 윤장훈 목사를 거쳐 지난해 8월에 고형석 목사가 부임해 교회 설립 정신을 잇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에 여러 여건을 충족하고 있다. 국제 비즈니스 허브의 위상을 갖춘 싱가포르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IBM, 제너럴 모터스 등 세계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 본부가 즐비하다. 이런 다국적 기업만 4200여곳에 달한다. 창이공항은 스카이트랙스 선정 올해의 공항 순위에서 최근 10년간 7차례 1위에 선정돼 국제 교통의 핵심 관문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세계선교협의회(CWM)와 OMF(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등 세계적인 선교단체들도 싱가포르의 국제적 연결성을 활용하기 위해 본부를 이곳으로 옮겼다. 전략적 교통의 중심지로서 싱가포르의 입지는 싱가폴한인교회에도 ‘아시아 선교의 허브’라는 사명을 수행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교회 설립 10주년 기념예배 모습.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싱가폴한인교회의 선교 사역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인도네시아 바탐과 인도 첸나이, 캄보디아 바탐방, 말레이시아 쿠칭 등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 각 지역의 선교사들과 네트워크를 맺은 게 첫 시기다. 교회는 이 시기를 ‘두루 선교’로 정의하고 있다. 골고루 두루두루 광범위한 선교를 펼친 시기라는 의미다.

교회는 설립 30주년을 맞은 2010년부터 선교 패러다임을 ‘축의 선교’(Hub Mission)로 전환했다. 교회는 축의 선교를 ‘선교의 영성과 신학과 방법을 공급하는 원심적 근원의 역할을 하는 선교’ ‘각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영향력을 결집하고 그 힘들을 다시 각 선교지로 지도력을 발휘하는 선교’로 규정했다.

교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케이크 커팅 장면. 싱가폴한인교회 제공

싱가폴한인교회 선교부 부장을 역임한 백용태 장로는 “현지인들이 주도하고 자립까지 할 수 있는 선교 생태계를 만들 때 선교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오래전부터 형성돼 있는 교회”라며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가 스스로 성장하고 또 다른 선교를 하는 교회로 세우기 위해선 서로 다른 바큇살을 연결하는 바퀴 축처럼 다양한 선교 주체를 연결하는 선교 지도력이 필수적인데 이를 우리 교회가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회가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에 발맞춰 이어온 대표적인 사역으로는 ‘케노시스 콘퍼런스’가 있다. 아시아 각국의 대표적인 신학대 학장과 선교학 교수들과 함께 진행하는 국제 선교학술모임이다. 또한 성도들이 선교적 삶을 살도록 돕는 ‘카이로스 선교훈련’도 진행하고 있는데 역사·문화·전략적 관점에서 선교를 이해하는 교육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와 더불어 선교관을 운영하며 동남아 선교를 위해 이동하는 한국교회 선교팀에게 숙박을 비롯해 선교 교육을 제공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하고 있다.

선교부 없는 교회가 목표

싱가폴한인교회가 선교적 교회로서 가지는 목표는 독특하다. 고형석 목사는 “선교부가 없는 교회를 지향한다”고 했다. 고 목사는 “특정 부서만 선교를 담당하는 구조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자발적으로 선교를 기획하고 참여하는 걸 지향하고 있다”며 “10년 뒤엔 선교부가 없어도 모든 선교 사역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선교적 공동체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지향하는 선교는 기능적 선교를 뛰어넘는 ‘존재론적 선교’다. 성도 개개인이 삶의 자리에서 선교사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고 목사는 이를 위해 교인들에게 선교(宣敎)가 아닌 선교(善交)를 먼저 요청한다고 했다. 교세 확장이나 전도보다 진정한 사귐 안에서 복음이 흘러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예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길 원하셨지 결코 우리 의지와 반대되는 강요나 폭력의 방식으로 우릴 대하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고 목사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이 말씀엔 기독교 선교의 핵심이 담겨 있다”며 “가장 작은 자를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건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이웃을 그리스도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혁명적 가르침”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복음의 메시지를 삶으로 살아낸다면 그 자체로 전도가 되고 거기서 교회 부흥도 뒤따를 것”이라며 “신앙인이기 전 먼저 좋은 사람이 되자고 나 자신과 교인들에게 권하고 있다. 아시아 선교의 허브로서 우리 교회가 먼저 모든 이웃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며 섬기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목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