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전공의들이 정부와 극한 대립을 이어온 강경파를 내보내고 온건파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전공의 10명 중 8명이 대화와 협상을 주장하는 온건파 지도부에 힘을 실었다. 이재명정부에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것과 맞물려 1년4개월을 끌어온 의·정 갈등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서울시의사회에서 임시 대의원회 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성존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대표가 수련병원 단위 130곳 중 105곳(80.8%)의 찬성표를 얻어 새 대전협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대화를 강조한 온건파로 분류된다. 강경파가 장악한 대전협 전 비대위가 극한투쟁 외에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공의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비대위원장은 최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만나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기로 합의하는 등 정치권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와 전공의들에게 주어진 협상 데드라인을 7월로 본다. 전국 수련병원 211곳의 하반기 모집이 7월 말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승준 한양대 의대 교수는 “전공의는 9월이 지나면 하반기 복귀가 불가능해지고 (정부는) 협상을 서둘러야 할 명분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다만 의·정 대화가 본 궤도에 오르더라도 사태 해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뿐 아니라 의료계 안에서도 전공의단체 요구안에 대해 이견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등 전공의단체 4곳은 지난 24일 공동성명서에서 ‘필수의료정책패키지·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 ‘보건의료 거버넌스 의사비율 확대’ ‘수련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을 요구했다. 책임자 사과 등을 담은 기존 7대 요구안을 크게 줄인 내용이다.
하지만 대한의학회는 수련·근로시간 단축은 수련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우려한다. 또 사직 전공의가 기존 병원에 복귀하도록 별도 정원을 주는 특례를 마련할 경우 정부는 또다시 ‘의사 특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보건의료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각종 기구에 의사 참여 비율을 높이는 것도 시민사회와 환자단체가 반대하는 상황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근무시간은 줄이고 1년에 시험을 두 번 보게 해 달라는 건 결국 전문의 취득 허들을 낮춰 달라는 무리한 요구다.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