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추진하는 디지털 화폐(CBDC) 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CBDC는 한은이 발행하는 디지털 원화로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는 성격이 다르다. 새 정부 들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추진 등으로 CBDC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은행들이 난색을 보이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9일 한은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 26일 CBDC 실거래 1차 테스트(한강 프로젝트) 참여 은행에 2차 테스트 논의를 잠정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정치권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CBDC 사업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을 명시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상태다.
CBDC 테스트는 한은이 기관용 디지털 통화를 발행하면 은행은 이와 연계된 예금 토큰을 유통해 금융소비자의 사용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는 프로젝트다. 한은과 7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이 지난 4월부터 10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차 테스트는 이달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은은 개인 간 송금과 결제 가맹처 확대 등을 반영해 2차 테스트를 연말 진행할 계획이었다.
불확실한 목표와 재원 부담과 관련한 은행들의 불만도 중단 원인 중 하나다. 1차 테스트를 위해 7개 은행이 그간 투입한 비용만 3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차 테스트 참여 은행장들을 직접 만나 협조를 당부했다. 2차 테스트 비용 절반 이상을 한은이 내겠다는 약속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인지 등 불확실성이 있어서 하반기에 CBDC에 자원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파악됐다”라며 “법제화 등 상황이 정리되면 재논의를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주도하는 CBDC 2차 테스트가 잠정 중단되면서 은행권 또는 비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 화폐의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한 가상자산(암호화폐)이다. 한은은 그간 CBDC를 기반으로 한 예금토큰이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개념이라고 강조하며 CBDC 테스트가 스테이블코인 도입 준비와 연결된다는 논리를 펴 왔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그에 따른 우려도 나타내왔다. 반면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27일 한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스테이블코인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민간의 움직임은 본격화되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가 금융지주와 스테이블코인 발행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달 초까지 해시드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에서 대표로 일했다. 해시드는 암호화폐 전문회사와 수탁사, 신탁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하는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