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올해 들어 미국 시장에서 매달 판매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거둔 성과다. 자동차 가격 인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패닉바잉’에 나선 미국 소비자를 공략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시장조사업체 워즈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 자동차 17만251대를 판매해 점유율 11.6%를 기록했다. 1월 10.5%(11만6362대), 2월 10.7%(13만881대), 3월 10.9%(17만2666대), 4월 11.1%(16만2618대) 등 올해 들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점유율을 확대했다. 1~5월 누적 판매량(75만2778대) 점유율은 전년 동기(10.5%) 대비 0.5% 포인트 상승한 11.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5.8%, 기아가 5.2%다.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선언한 뒤 미국 자동차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말까지 바꾸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기존에 없던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고심했다. 현대차·기아는 최대한 많은 비관세 물량 확보에 나섰다. 자동차 부품을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업체를 발굴했다. 차종별 생산 거점 전략을 다시 짰다. 지난달 앨라배마 공장의 미국 현지 판매량은 2만9956대로 1년 전(2만7383대)보다 9.4% 증가했다.
한국에서 생산한 차량도 관세 발효 전에 최대한 많이 선적해 미국에 보냈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 4월 열린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완성차 기준 3개월이 넘는 분량을 비축했고 자동차 부품은 이보다 더 많은 재고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응은 미국 소비자가 관세에 따른 자동차 가격 인상에 대비해 구매를 서두르며 패닉바잉에 나선 상황에서 효과를 봤다.
현대차·기아의 지난 4월 미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3%로 증가해 업계 평균(11.1%)을 크게 넘어섰다.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시장 상황에 맞게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구축한 것도 점유율 향상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올해 하반기에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거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관세 발효를 앞두고 비축했던 ‘비관세 재고’가 소진되면서 가격 인상 압박이 커졌다. 앞서 포드가 멕시코 생산 차량의 미국 판매 가격을 올렸고 토요타는 다음 달부터 가격을 평균 270달러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도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가격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나는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관세를 (더) 올릴 수 있다. (관세가) 높을수록 그들(외국 자동차 업체)이 이곳에 공장을 지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