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부는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들었지만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단연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가장 노른자위이자 부유한 강남 한복판의 호화 백화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압축 성장과 물질만능주의에 취한 한국이 부실의 터전 위에 안주한 채 국민 안전에 소홀히 한 데 따른 값비싼 대가였다.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부상한 국내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삼풍 참사가 발생한 지 꼭 30년이 됐다. 세대가 바뀔 시간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삼풍 사고 이후 정부는 재난관리법을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이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사망 192명), 세월호(299명)·이태원 참사(159명), 무안 제주항공 사고(179명) 등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이 이윤, 효율, 정부 보신주의에 언제든지 뒷전에 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는 새 고통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 되고 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최근 삼풍 참사 30주기를 맞아 유족 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유가족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3.3%는 정신적 고통이 심한 ‘외상후울분장애(PTED)’를 겪고 있다. 유가족 중 83.3%가 전문가의 심리 지원을 받지 못했고 48.3%는 ‘참사 후 가족 내 갈등을 겪은 적’이 있었다. 추모 공간에 대한 불만 역시 적지 않았다. 응답자 절반은 양재시민의숲에 위치한 추모 공간에 만족하지 않았고 73.4%는 추모 공간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고 11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도 과거 인터뷰에서 “사고 경험자로서 현장에 위령탑 하나 없이 대형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 건물이 바로 아크로비스타다. 아크로비스타에 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삼풍 참사 26주기인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30주기인 어제 내란특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나왔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저래 삼풍의 비극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