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고 했다. 예방의학은 사회 집단의 질병을 예방함으로 개인의 감염을 방지하며 건강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게 목표다. 18세기 천연두 예방접종이 개발됐고, 19세기엔 콜레라 창궐을 막으려던 영국 의사 존 스노우가 상수도 오염의 실체를 밝혀내며 공중보건의 초석을 놓았다. 20세기엔 백신과 항생제, 건강검진 등의 제도가 자리 잡으며 감염병이 크게 줄었다. 이제 그 관심은 점차 만성질환 예방으로 확장되고 있다. 오늘날 예방의학은 개인의 심혈관질환과 암, 당뇨는 물론 노화 자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예방의학은 크게 세 단계로 설명한다. 질병 발생 자체를 막는 것이 1차 예방,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는 게 2차 예방이다. 이미 병에 걸린 사람의 합병증이나 재발을 막는 건 3차 예방이다. 최근엔 질병 예방을 넘어 건강 수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이란 목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여기에 재생의학이 새로운 역할로 등장하고 있다. 재생의학은 원래 손상 조직이나 기능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줄기세포와 조직공학, 유전자 치료 등 여러 기술이 이 분야를 이끌어왔다. 무릎 연골이 닳아 통증을 견디기 어려운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해 연골을 되살리거나 신경세포가 파괴된 파킨슨병 환자에게 줄기세포 유래 세포를 주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생의학은 예방의학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질병은 단번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만성질환은 대부분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환자가 병을 진단받을 땐 이미 상당한 손상이 누적된 뒤다. 조직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미세한 손상과 기능 저하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질병 자체를 막을 가능성이 열린다.
관절염은 연골이 점진적으로 닳아 없어지는 병이다. 지금은 말기 환자에게 주로 줄기세포 치료가 시도되나, 조기 단계에서 손상된 연골을 되살리고 퇴행 속도를 늦춘다면 관절염 자체를 막는 예방적 치료로 발전할 수 있다. 심혈관계 질환도 마찬가지다. 동맥경화는 서서히 진행되다 심근경색으로 폭발한다. 혈관 내피세포 기능을 재생하는 치료가 조기 시행된다면 심장병의 예방도 가능할 것이다.
노화도 예외는 아니다. 피부와 근육, 면역계 등 신체 전반의 기능 저하는 줄기세포 고갈과 직접 연관이 있다. 이를 지연시키고 기능을 유지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신체 기능을 젊게 유지하는 새로운 길도 열릴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현실화됐다. 국내 한 기업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연골재생 촉진 목적으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일본은 재생의료안전성보장법을 통해 개인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은 재생의학의 예방적 활용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관련 연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재생의학은 줄기세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조직공학은 손상된 조직을 대신할 생체재료를 만들어낸다. 유전자 치료는 유전적 결함을 미리 교정해 질병의 씨앗을 차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3D 바이오프린팅이 발전하면서 개개인에 맞춤형 조직을 제작하는 방식도 가능해지고 있다.
물론 재생의학이 예방의학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장기적인 안전성 검증과 비용 문제, 윤리적 논란과 규제 정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치료 중심 의학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미래의 의학은 그저 병을 치료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관리하고 손상되기 전부터 건강을 유지하는 게 의학의 중요한 임무로 자리 잡아야 한다.
재생의학은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 있다. 몸속 조직이 손상되고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하나님이 준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예방이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지금, 더는 치료만으로 건강한 삶을 담보할 수 없다. 예방과 재생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의학의 길이 열리고 있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