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농부의 얼굴

입력 2025-06-30 00:35

여름의 기쁨 중 하나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과일이 제철을 맞는다는 점이다. 태양의 기운을 흠뻑 받고 달콤하게 무르익은 온갖 과일을 차례차례 한 종류씩 섭렵하며 음미하다보면 어느 새 길고 가혹할 여름도 훌쩍 지나가 있을 것이다. 지난주엔 토마토를 샀고, 이번주는 참외를 샀다. 다음 주엔 봄눈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 남은 복숭아꽃이 드디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며 1년 동안의 복숭아나무를 계절별로 보여준 사이트에서 복숭아를 예약해뒀다. 조금 전에는 뽕나무 재배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한 경기도 양평에서 출시하는 오디를 다다음 주의 과일로 결정했다.

올해는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과일을 구매하고 있다. 전국 구석구석 농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들에는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낀, 과일을 수확 중인 농부의 얼굴이 보인다. 활짝 웃으며 자랑스레 자신이 수확한 알록달록한 과일들을 손에 든 농부의 얼굴이 나로 하여금 과일을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를 응원해주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가업, 잇는, 청년, 농부. 이 네 가지 단어가 모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긴다.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수확하고 출하하는지, 그 공정도 자세히 소개를 하고 있어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옷을 구매할 때에는 선호하는 브랜드가 구매 결정의 큰 이유가 되고, 책을 살 때에는 저자에 대한 호기심과 신뢰가 가장 큰 이유가 되는데, 농산물을 살 때에는 농부의 웃는 얼굴이 가장 큰 이유로 작동된다. 건강미 넘치는 웃음과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는 그런 얼굴을 주변에서는 자주 목격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나에겐 농부였던 아버지가 있었다. 농업 진흥의 시대에 농업을 전공했고, 농업이 뒷전으로 밀려버린 시대에 농부로 사셨다. 날씨에 따라 일희일비하시던 아버지가 늘 안타까웠다. 웃는 농부의 얼굴에서 그늘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