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저출산·고령화 시대 ‘미래 먹거리’로 신탁업에 주목해왔지만 인식 부족과 제도 개선 미비로 아직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 19일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한 ‘경제 선순환과 금융산업 혁신을 위한 은행권 제언’ 최종 보고서에서 금융산업 혁신 주요 방안 중 하나로 ‘신탁의 종합재산관리기능 강화’를 꼽았다.
보고서는 “기존에는 제도적 한계로 인해 신탁이 자산관리수단으로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주로 금융상품 판매 목적의 금전신탁 및 부동산신탁 중심으로만 성장했다”면서 “고령화에 따른 자산관리 수요 증가와 치매노인·발달장애인 등 복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탁제도 개선을 통한 자산관리서비스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탁이란 금융사가 금전·증권·부동산 등 다양한 형태의 재산을 수탁받아 고객 대신 관리하는 자산관리 상품이다. 고액 자산가를 위한 ‘맞춤형 관리 상품’으로 인식되지만, 퇴직급여 운용을 금융사에 맡겨 안정적인 노후를 영위하려는 퇴직 근로자도 신탁 고객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 노인이 원만하게 재산을 관리하고 상속 재산을 분배하는 데도 요긴한 역할을 한다.
은행권은 고령화 시대에 맞춰 신탁업에 주목해왔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복지 지출이 증가하면 이자수익 중심의 기존 금융 산업은 수익성이 떨어져 새로운 비이자수익원을 창출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상대적으로 보유 자산이 많은 50~60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는 한국의 상황도 신탁업 분야 전망을 밝게 한다.
하지만 국내 신탁 시장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신탁업계의 202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탁고 비중은 54.6%로 미국(119.8%) 일본(269.6%)과 격차가 크다. 반면 고령층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과 예·적금에 묶여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구성원이 포함된 국내 가구의 총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80%에 달했다.
그간 신탁업 분야 제도 개선이 차일피일 미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신탁가능재산 범위를 넓히는 등의 내용을 담은 신탁업 혁신방안을 2022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대표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특정금전신탁 취급 금지를 비롯한 신탁업 분야의 여러 ‘칸막이’가 대중화를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면서 “신탁업이 활성화되면 은행이 고금리 시기 ‘이자 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