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보’ 여러 세대 거치며 발전 거듭
실험실서 나온 기술 상용화가 관건
AI 기술을 휴보의 브랜드로 전환
지금이 결정적 타이밍 될 수 있어
실험실서 나온 기술 상용화가 관건
AI 기술을 휴보의 브랜드로 전환
지금이 결정적 타이밍 될 수 있어
인간을 닮은 로봇 ‘휴보(Hubo)’는 대한민국 로봇 기술의 상징이다. 한국 최초의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KAIST 교수에게 ‘휴보 아빠’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 상징을 말해준다. 휴보는 2004년에 걷기, 계단 오르기, 문 열기, 운전 등 다양한 인간 동작을 구현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마침내 2015년에는 미국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운전, 장애물 돌파, 밸브 조작 등 8개 미션을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수행해 우승을 차지하고 상금 200만 달러(약 22억원)를 받았다. 대한민국 로봇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인정받은 쾌거였다.
이후 휴보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발전을 거듭했고, 여기에 최신의 인공지능(AI) 기술이 융합됐다. 영국, 미국, 두바이 등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도 KAIST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23년에는 KAIST팀(명현 교수팀)이 ‘국제 사족보행 로봇 경진대회’에서 매사추세츠공대(MIT)팀을 246점 대 60점이라는 큰 차이로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말 사족보행 로봇 ‘하운드(Hound)’는 100m를 19.87초에 주파하며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세워 주목받았다(박해원 교수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해양로봇 경진대회에서 KAIST팀(김진환·심현철 교수팀)은 참가한 세계 52개국팀 가운데 우수한 성적을 거둬 총상금 65만 달러(약 8억6000만원)를 수상했다. 이어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ICRA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종합 1위를 기록하며 KAIST(명현·유지환 교수팀)의 로봇 기술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AI가 인간의 뇌를 모방하듯 휴보는 인간의 신체 동작을 따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몸동작 역시 지능에 의해 제어되므로 휴보는 ‘또 다른 AI’라고 할 수 있다. AI가 세상을 인식하면 ‘피지컬 AI’가 되고, 인간의 심부름꾼이 되면 ‘에이전트 AI’가 된다. 이들은 모두 휴보와 같은 자율형 휴머노이드를 통해 구현된다.
휴보 로봇은 정말 다양하게 쓰인다. 농업, 의료, 물류, 제조, 안전,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처럼 일할 수 있다. 농장에서 딸기 따는 로봇, 매장과 병원에서 감성형 고객 응대 로봇, 환자를 돌보는 간호 로봇, 음식 배달 및 청소 로봇, 부품 운반 로봇, 무인 항공 정찰 로봇, 목욕탕에서 노약자를 돕는 로봇 등등. 특히 고령화와 인력난으로 휴보는 더욱 수요가 늘어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효용성은 더욱 피부에 와닿게 됐다. 휴보에 모든 AI 기술과 이슈를 하나로 모을 수 있다. 여기에서 반도체, 디지털 트윈, 클라우드, 센서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된다. 이곳에서 승부처를 만들 수 있다.
혁신은 실험실을 넘어 시장 한가운데서 완성된다. 이제 실험실에서 나온 휴보 기술은 빠르게 상용화돼야 한다. 진짜 혁신은 기술의 상용화, 즉 ‘돈이 되는 기술’로 입증될 때 진가를 인정받는다. 한국은 기술력과 연구개발(R&D) 역량에서는 우수성을 인정받은 만큼 상업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자율 휴머노이드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제품 경쟁력과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다. AI+ 자율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아직 게임의 승자도, 패자도 아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브랜드 제품으로 인식, 헤겔식으로 표현하자면 ‘인정투쟁’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다행히도 현재 AI+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분야에는 아직 글로벌 절대 강자가 없다. 미국에서는 피겨AI, 테슬라(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아틀라스) 등 민간 기업이 상업화를 본격 추진 중이다. 피겨AI는 BMW 등과 협력해 10만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테슬라는 옵티머스 로봇을 통해 범용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자동차·EV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속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레인보우로보틱스, 삼성전자, 현대로템, LG, 두산, HD현대 등이 참전 중이다.
한국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첫째, 로봇 밀도 세계 1위의 제조업 강국으로서 산업 현장에서 실전 데이터와 운영 경험이 풍부하다. 둘째, 부품·소재의 국산화와 함께 세계적 수준의 하드웨어 기술력이 우수하다. 셋째, AI, 로보틱스, 자동화, 자율주행 등 융합 기반 기술력이 견고하다. 넷째, 대학의 연구력, 기업의 생산력, 정부의 전략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민관협력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시간의 싸움과 인정투쟁이다.
한국은 AI 연구 역량,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점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성형 AI의 시장 경쟁력은 때를 놓쳤다. 제2의 AI 자율주행 휴보 시장 점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제품 실행력’과 ‘글로벌 브랜드’의 구축이다.
인지과학·마케팅에 “인식이 제품에 우선한다”는 말이 있다. 제품력 그 자체의 중요성 못지않게 고객의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을 때 시장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마케팅 전문가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는 이를 ‘포지셔닝’이라 불렀다. 기동전에 앞서 ‘진지전’에서 승리해야 한다.
자율주행 휴보 시장은 현재 ‘심리적 포지셔닝을 위한 이미지 전쟁’ 중이다. 심리적 점유 전에 승리해야 시장에서 승리한다. 테슬라는 옵티머스 로봇 동영상을 띄우며 “전 세계 인류를 위한 범용 로봇”이라는 서사 중심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피겨AI는 역시 BMW 등과의 협업을 강조하며, 커피를 만들고 사람과 대화하는 로봇 시연 영상을 SNS와 유튜브에 공유해 대중적 신뢰와 친밀감을 쌓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화려한 기계체조와 댄스 영상으로 기술력과 감성적 매력을 동시에 홍보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스즈키는 ‘작고, 적게, 가볍게, 빠르게, 아름답게’라는 제조 철학을 부각시키며, 전동 휠체어 및 자율 배송 로봇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제조업과 문화와 휴보 강국인 대한민국은 글로벌 인정투쟁에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지 전에서 밀린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한류가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듯 이제 ‘휴보 아이돌’이 나타나 관객의 반응에 실시간으로 교감하면서 ‘AI 휴보 강국’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심어준다면, 대한민국은 휴보 산업의 메카로 인식될 수 있을까. 이 AI 기술을 휴보의 브랜드로 바꾸는 시간, 지금이 그 결정적 타이밍이다.
여현덕 KAIST-NYU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