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통일부 명칭 변경의 딜레마

입력 2025-06-30 00:32

이재명정부가 통일부에서 통일을 빼는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2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명칭 변경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중 통일부 차관도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에서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검토해 볼 계획”이라며 명칭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 후보자는 “평화와 안정을 구축한 토대 위에서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고 명칭 변경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독일 사례도 언급했다.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서독의 빌리 브란트 정부는 1969년 통일 정책을 담당하던 전독부를 내독부로 변경했다. 전독부는 서독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전체 독일 문제를 다룬다는 뜻의 명칭이었는데, 독일 내부 관계를 뜻하는 내독부로 바꾼 것이다. 이로써 서독은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며 동서독 관계 개선의 의지를 표현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현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을 세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을 포기한 듯한 서독은 통일을 이뤘고, 통일을 주장한 우리는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다.

독일 통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영감을 줬지만 독일의 통일 경험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동독의 자체 붕괴가 가장 가까운 원인이었다. 1989년 자유를 동경한 수많은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또 다른 조건은 소련의 정책 변화였다. 통일 직전에도 동독에는 30만명 이상의 소련군 병력이 주둔했고, 소련군은 동독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소련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장 이후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통제가 느슨해졌고, 동독 주민의 탈출을 방기함으로써 독일 통일을 도왔다.

북한 사정은 이와는 판이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은 대내외적 역경에도 불구하고 내적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입증해 왔다. 또한 북한은 ‘주체의 나라’다. 소련이 동독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며 정치적 통제를 가했던 것과 달리 북한에는 외국군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은 외부로부터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해 왔다. 중국조차 자신의 대북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종종 토로한다.

북한은 지난해 초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발표했다. 북한은 놀랍게도 김일성 때부터 내려오던 기존의 ‘조국 통일’ 기조를 뒤집으며 대한민국은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적대국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에 따라 통일 관련 상징물을 철거해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통일부의 명칭 변경 고려는 통일보다 평화를 우선하는 정책 기조를 시사하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정책의 성공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사례를 염두에 둔 잠정적 통일 포기가 북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평화를 내세우며 통일을 뒤로 미뤘지만 결국 통일이 목표라면, 북한이 단기적 협상 전술 차원에서라면 모를까 선뜻 수용할지 의문이다.

반면 새로운 정책이 통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남북 평화 공존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면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더 나아가 통일을 평화 공존으로 바꾼다고 민족의식에 기반한 통일 열망이 사라질 수 있는지, 평화 공존 추구가 북핵 위협을 영구화하지 않을지 등 쉽지 않은 문제도 제기된다. 통일부 명칭 변경을 고려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따르는 만큼 신중한 의견 수렴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