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고리1호기… 500조 원전 해체시장 열었다

입력 2025-06-27 02:02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6일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해체를 승인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후 2017년 6월 영구정지 결정됐다. 사진은 이날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1호기를 맞은편에서 바라본 모습. 연합뉴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6일 고리 1호기 해체 승인을 의결하면서 총 50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마련됐다. 다만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비롯한 방폐장 부지 마련, 지역주민과의 수용성 확보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날 원안위 해체 승인에 따라 다음 달부터 ‘해체 준비’ ‘주요 설비 제거’ ‘방사성폐기물 처리 및 부지 복원’ 순으로 해체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첫 해체작업인 만큼 사용후핵연료 처리부터 부지 활용까지 기술력을 축적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한수원은 이미 총 96개의 해체 상용화 기술 중 58개를 확보해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 세계 영구정지 원전은 214기다. 이 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미국 20기, 독일 3기, 일본·스위스 각 1기로 25기에 그친다. 특히 상업용 대형 원전을 해체한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는 2145년까지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 규모가 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관건은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다. 현재 고리 1호기 내부 대형 수조인 습식저장조에 전체 사용후핵연료의 약 35%가 임시보관돼 있으며 나머지는 고리원전본부 내 다른 발전소 저장시설에 흩어져 임시보관 중이다. 본격적인 해체에 착수하려면 원전 건물 자체를 해체해야 하므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옮겨 보관할 별도의 공간 확보가 필수적이다.

고리본부 내 각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이미 포화상태다. 고리 1호기는 영구정지 이후 잔여 저장공간을 활용할 수 없어 저장용량이 이미 100%에 도달했다. 고리 2호기는 93.6%, 3호기 99.0%, 4호기 98.0%로 임계치에 근접해 있다.

한수원은 일단 고리원전 부지 내에 건설 예정인 건식저장시설로 옮길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8월 중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건식저장시설의 설계는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예전에 유사 시설을 운영한 경험도 있는 만큼 기술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지역주민 반발도 변수다. 고준위방폐물 특별법 제정으로 주민 보상 근거는 마련됐지만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은 대표적 기피시설인 만큼 지역사회의 반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해체 과정에서 방사성물질 피폭 등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도 과제다. 원안위는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과정에서 방사성물질 피폭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향후 해체 과정에서 지역협의회를 통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할 예정이다.

한수원이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절반가량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인 기술 실증은 이뤄지지 않아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해체 작업을 통해 실증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승인으로 다음 해체 심사 대상인 월성 1호기에 대한 심사 속도 역시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2019년 12월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는 지난해 6월 해체 승인 신청서류를 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질의·답변과 해체계획서 심사 등을 거쳐 약 21개월 후 원안위 심의가 마무리되는 심사 일정을 제시한 상태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