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하멜’ 이름 떼어낸 유럽한국학회… 기록의 본질을 되묻다

입력 2025-06-28 00:02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헨드릭 하멜(1630-1692)의 업적이 최근 재해석되며 유럽 한국학계 학술상에서 그 이름이 빠지게 됐다. 유럽에서 출판된 한국학 논문 가운데 우수작을 선정해 수여해 온 ‘헨드릭 하멜 상(賞)’을 학회의 이름을 딴 ‘유럽한국학회(AKSE·the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 상(賞)’으로 개칭하기로 한 것이다. 그가 기술한 당시 한국 사회상이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돼 유럽인에게 한국문화가 왜곡 전파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매체는 전하고 있다. 지면에는 “조선 사람은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강하다”와 같은 하멜의 기술을 근거로 “하멜은 기념할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봐야 할 대상”이라 의견을 제시한 학계의 인터뷰가 소개됐다. 물론 전문가들이 이리 결정한 데에는 나름의 복잡한 이유와 논거가 있겠으나 문화학자로서 필자는 이에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처음 이 상에 굳이 ‘헨드릭 하멜’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필시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태도가 일관되게 긍정적이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피해를 입혀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거리로 여긴다”, “착하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속일 수 있다”, “과거 청나라에서 쳐들어왔을 때 싸우다 죽기보다는 숲속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등 그의 표류기에는 지면에 소개된 것보다 더 강도 높은 비하 발언들이 줄을 이었다. 그의 이름으로 시상이 처음 이루어지던 당시에도 이러한 표현이 긍정적으로 해석되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하멜의 공(功)은 평가절하되어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학계의 움직임은 유럽에서 한국문화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주로 세계무대에 서게 된 한국 대중문화. 유학생 중 적지 않은 수가 처음 한국의 팝이나 드라마, 연예인들에게 매료돼 이곳에 왔다가 한국학이나 문학으로 관심을 넓혀가는데, 아마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세계인이 찾는 자랑스러운 한국문화를 한때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던 하멜과 굳이 연관 지을 필요는 없을 터. 귀한 한국학 논문들이 수상할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학계 관계자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 있다. 이해한다.

이 상에 처음 ‘헨드릭 하멜’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조선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와 관계가 없다. 외지인의 눈으로 조선의 사회상을 소상히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충분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학문의 기본은 세심한 관찰과 기술(旣述)에서 시작한다. 하멜은 표류 후 조선 땅에 억류돼 지내던 13년의 긴 세월 동안 그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느꼈던 바를 상세히 묘사했다. 여기에는 당시 조선 사람의 기질과 풍습, 형벌, 교육열, 지배층의 횡포는 물론 자신의 조선 탈출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멜의 표류기가 사실은 추후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되면 동인도회사에 위로금을 청구할 목적으로 작성한, 일종의 산업재해보고서였고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고초를 다소 과장해 묘사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하멜의 기록이 갖는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관찰이란 행위는 반드시 누군가의 오감에 의지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응당 관찰자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멜이 당시 조선의 사회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기록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찬사 일색인 누군가의 기록이 학계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있었던가.

자연과학과 달리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사물이 아닌 사람이 연구 대상이 된다. 즉 사람이 사람을 연구하는 셈이다. 자연스레 자만심이 발동한다. 연구자는 인간의 심리나 태도, 행동에 대해 이미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고, 이러한 환상은 관찰의 소홀함이나 부재로 이어진다. 이에 과학적 절차에 대한 학계의 집착이 인간에 대한 관찰을 더 어렵게 한다. 고도의 엄밀성을 획득한 자연과학에서도 여전히 객관적 관찰이 연구의 중심에 서 있건만, 현재 인문사회과학의 패러다임에서는 정교한 실험과 복잡한 통계 방법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흥미롭고 신선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해도 이를 그대로 발표해서는 유명 저널에 실을 수 없다. 특정 이론에서 논리적으로 가설을 추론하고 그 가설을 데이터로 검증하는, 이른바 ‘과학적’ 글쓰기의 틀에 관찰 결과를 애써 짜 맞춰야 그나마 빛을 볼 수 있게 된다. 인간에 대한 학문적 관찰과 진지한 호기심은 그만큼 더 줄어든다.

우리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늘 그래왔던 삶의 방식과 패턴들은 당연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며, 따라서 이를 관찰이나 설명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비교관찰이 필수다. 오히려 타문화에서 온 이들이 모국문화의 관점에서 제공하는 관찰과 질문, 그리고 기록이 우리의 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해외에서 일상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 한국문화의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하는 이유다. 단지 긴 타향살이에서 느끼는 김치나 라면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삼겹살 회식과 조직, 정부24, 전 국민 무료 건강검진, 주민센터와 공무원, 누진적 건강보험료, 따릉이, 수능과 재수, 두 번의 대통령 탄핵, 밥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이것들이 한데 뭉쳐 자아내는 한국문화의 진수는 타지에서 살아본 한국인이나 타지에서 온 외국인이 더 강하게 체감한다.

하멜은 ‘참여관찰자’의 시점으로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기록한 비전문 인류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필시 조선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조선을 보았을 것이며, 이것이 그와 그의 기록이 갖는 학술적 의미가 여전히 유의미한 이유다. 당시 중상주의(重商主義)가 꽃을 피우던 네덜란드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던 하멜이다. 지속가능한 상거래의 기본은 상호 간의 신뢰 아니었던가. 그런 그의 눈에 조선인의 거짓말은 너무 쉽고 일상적이라는 데서 일종의 문화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게 이러한 관찰은 분명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었을 터다. 문화적 맥락을 헤아려 표현을 다소 순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기록은 관찰자가 느낀 그대로 전달되었을 때 더 와닿는 법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기술의 직관성을 흩트려 놓아서는 안 된다. 짐작건대, 하멜의 기록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당시 조선 사회에 만연하던 거짓말의 심각성과 그것이 적시하는 문화적 특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멜의 공로는 한국의 옛 문화를 유럽인에게 소개한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의미 있는 학술적 기여는 그의 기록으로 하여금 우리가 한국 문화에 대해 타문화의 관점에서, 더 깊이, 성찰할 기회를 얻었음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가 자주 소환된다. 그리고 현재의 해석이나 시류에 맞지 않으면 곧 바꾼다, 아니 개정(改定)한다. ‘짜장면’은 자장면이 되었고, 갱신(更新)은 ‘경신’이 되었다가 다시 ‘갱신’이 되었다. 천장(天障)도 마찬가지. 교통체증은 ‘체쯩’이 맞는다고 하고, 효‘꽈’는 효‘과’가 맞는단다. 역사 교과서의 내용도 정권 따라 바뀐다.

과거에 정해진 이름이나 제도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물론 재해석해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해석에 맞춰 과거를 바꿔 나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에 따르는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 등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들지 않을까. 당장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청소년 교류 협정을 맺고 있는 서귀포시가 난처한 처지가 놓이게 되었다. 올겨울 서귀포로 놀러 오기로 한 네덜란드 학생들을 받아, 말아? 난제(wicked problem)의 전형이다. 잘 해결했다 생각했던 과거의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기어이 현실의 문제로 되돌아왔다. 과거는 평가와 배움의 대상이지 개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