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종이박스에 큼지막하게 적힌 시옷(ㅅ)과 비읍(ㅂ). 눈길을 끄는 두 개의 자음은 72년 역사를 가진 CJ제일제당의 신제품 ‘습김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래픽이다. 습김치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지난 4월 출시된 습김치는 CJ제일제당 대표 브랜드인 ‘비비고 김치’ 대비 32배 매운맛을 내세운 제품이다. ‘비비고’, ‘햇반’ 등 클래식한 브랜드를 유지해온 CJ제일제당의 제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이름과 디자인을 가졌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출시 40일 만에 SNS 콘텐츠 누적 조회 수 1000만회를 돌파했고, 온라인 전용으로 기획됐던 제품은 전국 4대 편의점에 입점하며 오프라인 채널로 발을 넓혔다. 누적 판매량은 6만개를 넘어섰다.
습김치 마케팅을 주도한 CJ제일제당 디자이너 강준호 스페셜리스트와 마케터 김현정 프로페셔널은 모두 90년대생이다. “이래도 되는 거냐”는 사내 우려 속에 파격을 실현한 두 사람을 지난 24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본사에서 만났다.
강씨는 습김치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달랐다’고 한다. “습김치 마케팅은 기존 제품들과 결이 다른 시도였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는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단어가 워낙 강한 인상을 주다 보니 실제로 이 이름을 써도 괜찮을지, 너무 자극적으로 보이지 않을지 고민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디자인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정확하게 전달 드리려고 했고, 다행히 잘 받아들여 졌어요.”
‘습’이라는 단어는 매운 음식을 먹고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짧고 강렬한 반응에서 착안했다. 실비김치의 초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부에겐 비속어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의 여지를 일부러 열어두는 것이 전략이었다고 강씨는 말한다.
“‘도대체 얼마나 매운데?’라는 궁금증을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소비자 참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마케팅을 기획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놀이형 콘텐츠인 ‘습참기챌린지(매운맛 참기)’가 확산하고 있어요. 김치가 젊은 세대일수록 덜 찾는 한식인데 실비김치는 먹방·챌린지 등 K푸드 트렌드와 발맞춰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씨는 이직한 지 두 달 된 ‘경력직 신입’이다. 첫 프로젝트를 앞두고 대기업 특유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걱정했지만 오히려 파격을 지지하는 열린 분위기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습김치와 CJ제일제당의 다양한 김치 제품이 등장하는 콘텐츠 확장을 통해 ‘습김치 세계관’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습’이라는 단어가 일상적 표현으로 퍼졌으면 좋겠어요. 매운 음식을 먹고 ‘좀 습한데?’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요. 앞으로도 소비자와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디지털 마케팅을 할 계획입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