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을 색깔에 빗댄다면 회색에 해당할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처럼, 좌우 진영이 추구하는 지향점의 중간지대를 찾아 국정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조가 연설 내내 반복됐다. ‘공정 성장’이란 키워드가 대표적이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의 문을 열어야 한다”면서 진보의 가치로 여겨지는 공정과 보수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성장을 한데 묶었다. 외교를 말할 때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국익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선택 기준이 돼야 한다”, 사회 문제를 언급하면서는 “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선 “이념과 구호가 아니라 민생을 살리는 실천이 새 정부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말로 중간지대를 찾았다.
흑도 백도 아닌데 흑과 백이 모두 섞여 있는 회색 지대를 이념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는 ‘실용’이다. 취임사부터 각종 인사에 이르기까지 줄곧 강조해온 실용의 기조를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더 구체적인 언어로 담았다. “오직 실용 정신에 입각해 국민의 삶을 살피고 경기 회복과 경제 성장의 길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이제 정책으로 구현해가야 한다. 당장 이슈로 떠오른 여러 정책에도 이런 시각에서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 추가경정예산의 소비쿠폰과 채무탕감 항목은 소비 진작 효과, 형평성 논란 등의 우려가, 상법 개정안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양곡법은 송미령 장관의 유임과 함께 지난 정부에서 거듭돼온 논란이 다시 제기됐다. 연설 문구처럼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실용의 관점에서 정책을 다듬고, 절충점을 도출할 길이 있을 것이다. 새 정부 출범 후 길지 않은 시간에 실용이란 구호는 국민에게 각인됐다. 이제 그것을 국민이 체감토록 흔들림 없이 정책에 반영해야 할 때다.
시정연설은 누구보다 여당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내용이었다. 좌도 우도 아니면서 좌우를 모두 담아내는 실용을 국회 용어로 바꾼다면 협치가 될 것이다. 지난 몇 년 국회는 이와 거리가 먼 극한 대결을 벌여왔다. 정권이 바뀌고 새 정부가 실용 기조를 내세운 마당에도 구태를 답습한다면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은 압도적 의석의 여당에 있다. 이 대통령은 “경제는 타이밍”이라며 신속한 추경 처리를 호소했다. 정부 정책의 뒷받침을 위해서라도 대화와 타협의 국회 운영은 필수적이다. 실용 정부가 성공하려면 여당부터 협치의 기조를 다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