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산을 삼키고 연기가 하늘을 가린다.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 일행은 화염산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이 거센 불길을 잠재우는 유일한 방법은 전설의 부채 ‘파초선’뿐이다. 평범해 보이는 부채지만 한 번 부치면 천둥번개가 치고, 두 번 휘두르면 태풍이 몰아치며 세상이 뒤집힌다. 작지만 강력한 이 부채는 권력의 은유다.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세상의 질서가 요동친다.
파초선은 작은 움직임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나비 효과’와도 닿아 있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을까?” 1972년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던진 이 질문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주 미미한 행동과 선택이 미래의 큰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모든 사건과 현상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파초선 비유를 꺼냈다. “권력이 그런 것 같다. 여러분이 하는 일, 작은 사인 하나, 관심 하나가 여러분에게는 거의 의미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죽고 살고, 누군가가 망하고 흥하고, 그런 게 쌓이면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공직자의 판단 하나가 국민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는 말이다.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리인”이라는 말로 공직의 본질도 짚었다.
실제로 그렇다. 서류에 찍힌 규제 도장 하나가 산업의 미래를 막고, 공무원 한 사람의 안전 점검 소홀이 대형 참사를 부른다. 책임 회피와 안일한 태도가 모여 거대한 행정 실패를 낳고 그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특히 안전 분야에선 그 판단의 무게가 더욱 막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이태원·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여러 재난을 통해 경험했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 파초선을 손에 쥔 이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 자신의 작은 결정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신중하게 파초선을 휘둘러야 할 사람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일 것이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