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3원. 지난달 내 계좌에 들어온 저작권료다.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못 버리고 철없이 발표한 곡이 다섯 개다. 나조차도 잘 듣지 않는 곡 ‘하리보’가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에 갑자기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평소(약 500원)보다 5배 가까운 저작권료를 받게 됐다. ‘이러다 진짜 하나 걸리면 큰돈 만지는 거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잠깐 해본다. 로또 1등 당첨과 다를 바 없는 확률임을 알지만, 상상은 즐겁다.
현재 창작자의 상황은 즐거운 상황은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척척 만들어 내는 글과 노래, 이미지, 영상의 수준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서다. 유튜브에는 AI로만 만든 영상을 올리는 채널도 있는데 “이러다 정말 못 알아볼 수준까지 발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콘텐츠 소비자도 우려스러울 테지만 저작권자인 창작자의 마음도 복잡하다. 이제는 인간이 아닌 기계와도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커피 한잔도 못 사 먹는 저작권료를 받고 있지만 AI 스타트업 앤트로픽과 작가들의 소송 결과를 내 일처럼 지켜봤다.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될 AI 업체들에서 받는 저작권료가 창작자들의 또 다른 수익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다. 그만큼 창작자의 수익원이 마땅치 않다.
국내 창작자들이 창작 활동으로 얻는 연소득은 1000만원에 불과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예술인 실태 조사를 보면 2023년 예술인 1인당 평균 연소득이 1055만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국민 1인당 평균 연소득 2554만원의 41.3%다. ‘소득이 없다’고 응답한 이도 31%나 됐다.
AI 학습을 위해선 인간이 만든 막대한 규모의 창작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빅테크들은 인간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가져다 썼다. 창작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지브리풍(일본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생성하는 오픈AI의 챗GPT가 저작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소송은 앤트로픽의 승리로 돌아갔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윌리엄 알섭 샌프란시스코 연방 판사는 작가들이 앤트로픽을 상대로 자신들의 책을 AI 훈련에 무단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줬다. 책 원본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 변형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판결이다.
AI 학습이 사람의 창작물을 그대로 복제해 대중에게 재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형해 가치를 재창조했다는 게 판사의 생각이다. 재판부는 앤트로픽이 AI 훈련을 위해 사용한 책을 구입하지 않고 불법 다운로드받아 사용한 것만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AI 훈련에 사람의 창작물을 사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인지를 판단한 미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다. 앞으로 줄줄이 이어진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챗 GPT 개발사) 등도 여러 작가와 언론사, 음반사 등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종종 AI 발전의 끝을 상상해 본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비용도 저렴한 창작물 같은 것을 쏟아내는 AI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창작자는 몇 없을 거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렇다. 창작자가 사라지면 AI가 학습할 창작물도 고갈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습 방식이 지속 가능할까. AI 연구기관 에포크AI는 AI 학습 속도가 데이터 증가 속도를 앞지르면서 내년부터 학습용 데이터가 소진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앤트로픽 승소 소식에 테크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창작자가 사라진 미래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이제는 빅테크도 창작자를 AI 생태계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발전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들이 원하는 AI 생태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창작자와 대립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일부 AI 기업은 창작자와 저작권 계약을 하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법적 대응으로 발생할 비용을 내느니 합의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모든 창작자가 사라진 세상에서 기계가 만든 것을 듣고 보고 읽으면서 감동과 위로를 느끼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광수 경제부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