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아버지는 평생 술과 도박, 외도로 가득한 삶을 사셨고, 가족들은 그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교회 소그룹에서 가끔 나누고 싶어도 괜히 아버지를 욕되게 하고 또 이 이야기가 퍼져 나가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A : 질문하신 분은 정말로 힘든 삶을 살아오셨겠네요. 한동안 ‘우리 가족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자신을 숨기며 지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주신 것을 보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좀 되신 것 같습니다. 이 질문은 “말은 하고 싶은데, 말을 하고 난 후 주변 반응이 걱정돼요”라고 읽힙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자기개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야기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생각과 준비 없이 말하게 되면 충분한 효과를 누릴 수 없습니다. 나의 상처를 말하는 것은 내가 더는 그 상처에 억눌리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 의지를 표현하는 거죠. 상처를 말하는 것의 또 다른 효과는 이야기하면서 내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리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개방하면서 더 선명해지고 조금씩 더 보이게 되면 그 이야기는 상처가 아닌 치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내 상처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말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내 말을 들을 이 사람들은 내 얘기를 잘 경청해 줄 사람인가. 내 말을 듣고 함부로 정죄하거나 비난할 사람들은 아닌가. 둘째 내가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가. 어떤 사람은 내 이야기를 흘려들을 수도 있고 이야기 후에 원하는 반응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응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말한 것에 집중하며 조금씩 정리해나갈 수 있다면 내 상처를 말하는 모험을 좀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처를 말하는 일은 말하고 나서의 개운함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항상 좀 여운과 후회가 남습니다. 상처 말하기의 효과를 생각하며 반응을 조금은 감당할 수 있겠다 싶으시면 이야기를 나누는 용기를 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푸름 치유상담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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