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전쟁을 기억하며

입력 2025-06-28 00:38

찬송가 71장 ‘예부터 도움 되시고’가 오르간 전주로 울려 퍼진다. “예부터 도움 되시고/ 내 소망 되신 주/ 이 세상 풍파 중에도/ 늘 보호하시리” 응답송을 부르고 성경을 낭독한다. 민수기 21장 5절이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이어 죄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저희들이 범죄했습니다. 이 민족이 전쟁의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해방을 주신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주님 주신 자유를 소중하게 간직하지 못한 채 서로 물고 뜯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주님, 이 나라의 교회마저도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되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교단끼리 싸우고, 교회가 나뉘어 다투고, 진보와 보수의 신학 논쟁이 교회를 찢어놓았습니다. 주여 이 모든 죄를 참회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용서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거두시고 평화와 화해의 길로 이 민족을 인도하옵소서.”

6·25전쟁을 기억하며 드린 기념예배의 도입부다. 27일까지 국민일보에 ‘역경의 열매’를 연재한 문성모 목사가 2020년 6·25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 공유한 내용이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문 목사는 시무하던 강남제일교회를 통해 이런 예전(禮典)을 만들고 개별 교회에 확산하려 노력했다.

성경 낭독은 구원과 감사, 참회와 자복, 결단과 축복으로 이어진다. 임시정부와 독립군 애국가로 쓰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그 곡조에 가사를 붙인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부르며 다시 기도문을 이어간다.

“주님,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잔혹한 무신론자들의 만행 속에서 교회가 무참히 유린되고 많은 성직자와 교인들이 순교를 당했으나, 주의 능력의 손으로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과 같은 유엔군 파병이 결정되고, 자유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었다. 주일 새벽 미명의 순간에 북한 공산정권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략했다.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남한은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기적적으로 유엔군 참전이 결정됐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됐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현재까지 70년 넘게 휴전 중이다.

전쟁 중에 국군과 경찰 63만명, 유엔군 15만명 등 78만명이 사망 혹은 부상하거나 실종됐다. 북한군 80만명, 중공군 123만명 등 북쪽 군인들의 인명 피해도 203만명을 넘겼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전재민(戰災民) 수가 1952년 3월 기준 1000만명을 넘어서 당시 국민의 절반이 전화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교회가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 공산군에 피살되고 납북된 성직자들 가운데 밝혀진 사례만 400명 이상이다.

문 목사는 3·1절 광복절 6·25전쟁은 한국교회가 반드시 예배 전례로 기억해야 할 절기라고 강조한다. 기독교인이 주축이 돼 일제강점기 독립을 외쳤고, 구약의 출애굽 사건처럼 해방을 맞이했으며, 6·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참화 속에서 한강의 기적이란 회복과 부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키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교회 문화로 보전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떠올리며 교회 안에서 6·25 기념예배를 드릴 때 비로소 태극기를 흔들어야 한다.

유럽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의 이스라엘-이란 무력충돌과 미국의 개입, 전면전 직전까지 갔던 아시아의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75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한국교회가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때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