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등장하는 ‘사전’이라는 말 때문에 자칫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딱딱한 개념만 나열한 지루한 책 아닌가 하고. 하지만 서울대 교수로 뇌인지과학자인 저자는 다양한 이론적 성과물에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가면서 최대한 자상하게 설명한다. 뇌과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사전’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것은 단지 ‘인지’, ‘감정’, ‘본능’ 등 목차뿐이다.
저자는 과학자로서의 첫발은 천문학이었다고 한다. 빅뱅과 양자역학을 배워가는 동안 인간의 이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 신경과학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뇌와 마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을 발견해 나갔다. 저자는 “진짜 ‘나’는 의식 위에 존재하는 얕은 감정이나 기억이 아니라, 수억 년에 걸쳐 축적된 무의식적 뇌 기능들, 진화적 본능, 그리고 환경과 경험이 만든 결과물”이라면서 “책은 ‘마음’이라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인류는 몸과 마음이 분리된 실체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마음이 뇌를 통해 몸과 연결되고, 영혼이 ‘몸의 조종사’라는 ‘심신 이원론’을 주장했다. 신경과학 연구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몸(뇌)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견해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저자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느낌’ 정도로 이해하는 감정은 정확히 말하면 뇌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체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다. 일상 속 수많은 정보를 모두 동시에 처리하고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뇌에는 선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주의 집중’이라는 기능이 있다. 생존을 위한 중요한 정보일수록 빠른 속도로 파악하고 정확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특정 상황에서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하면서 높은 주의력을 갖도록 만든다. 저자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 무서운 사진을 제시했을 때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이후 집중력 과제에서도 빠르게 반응했다.
기억에 대한 오해도 많다. 보통 기억을 블랙박스처럼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기록으로 착각하지만, 저자는 사실 기억은 ‘뇌의 창조물’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기억의 메커니즘은 특별한 차이가 없는 비슷한 정보를 서로 묶어 저장하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버리기도 한다. 과거 기억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이유다. 저자는 “기억의 기능은 미래에 비슷한 상황을 예측하는 것으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빠르고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뇌의 기본적인 특성은 뇌 가소성(plasticity)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매 순간의 경험과 행동은 뇌를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개념이다. 저자는 “많이 쓰는 기능은 강화하고 많이 쓰지 않는 기능은 약화하는 것이 뇌 가소성의 이치”라며 “많이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달리 말하면 뇌의 자연적인 퇴화는 막을 수 없지만 속도는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2000년 영국에서 택시 기사와 일반인, 버스 기사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보니, 택시 기사의 경우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 뒷부분이 가장 크고 가장 많이 활성화돼 있었다. 런던의 택시 기사는 자격시험을 통화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경로를 기억해야 한다. “뇌를 아는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