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영양 불균형 메우는 지역 교회 ‘복음의 밥상’

입력 2025-06-27 03:21
국명호(앞줄 왼쪽 네 번째) 여의도침례교회 목사가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광야교회에서 재단법인 나섬 봉사자들과 함께 쪽방촌 이웃들에게 전할 영양죽을 포장한 뒤 손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의도침례교회(국명호 목사)가 최근 ‘2025 국민미션어워드’에서 ‘올해의 교회’로 선정됐다. 여의도침례교회는 성경 중심의 복음 신학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신앙 교육과 공동체 사역을 통해 성도들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돕는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중앙아시아 침례신학교’를 세워 현지 선교사 양성과 지원 사역에도 앞장서고 있다.

교회는 특히 지역사회 섬김과 이웃 사랑을 꾸준히 실천하며 모범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눔과 섬김’이라는 의미를 담은 재단법인 ‘나섬’을 설립해 지역사회를 돌보며 복지 사역을 체계화해 취약계층을 지원해 왔다. 교회의 섬김은 주민들의 신뢰와 공감을 얻으며 지역사회에서 든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쪽방촌 식사 봉사도 그중 하나다. 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22일 영등포 쪽방촌을 찾은 국명호 목사와 나섬 봉사단과 동행했다.

‘불균형 식사’…건강의 사각지대 쪽방촌

“어서 오세요. 비도 오고 좁은 골목길인데 잘 찾아오셨네요.” 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나섬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광야교회(임명희 목사) 식당으로 모여들자 앞치마를 두른 국 목사가 따뜻한 인사로 그들을 맞이했다. 봉사자들은 쓰고 온 우산을 접고 젖은 어깨를 털어낸 뒤 식당 안을 둘러보며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봉사에 나섰다.

국 목사는 “이처럼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도 쪽방촌 이웃을 위해 기꺼이 발걸음 해 준 여러분의 수고가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될 줄 믿는다”며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쪽방촌 이웃들에게 나눠줄 메뉴는 영양 가득한 닭죽. 봉사자들은 총 300인분 나눔을 목표로 지난 2주간 금요일과 토요일에 걸쳐 75인분씩 준비했다. 안미희(55) 나섬 단장은 “무더운 여름철 쪽방촌 어르신들은 입맛을 잃기 쉬운 데다 제때 식사를 챙기기 어려워 영양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조금이나마 기력이 보충되도록 보양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변성식 여의도침례교회 장로가 가마솥에서 닭을 건져내고 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건져내 식힌 수십 마리의 닭이 국 목사 앞에 놓였다. 그는 익숙하게 장갑을 끼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뼈를 바르며 살코기를 정성껏 손질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봉사자가 “목사님 손이 정말 빠르시네요”라고 감탄하자, 국 목사는 “이제야 제 숨겨진 재능을 찾은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식당 한쪽에서는 또 다른 봉사자들이 영양죽과 함께 작고 아담한 손편지를 준비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작은 정성이지만 저희가 마음을 담아 준비한 영양 가득한 닭죽과 시원한 수박 드시고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한 봉사자는 “글씨가 예뻐야 받는 분들도 기분 좋으실 텐데 내 글씨를 알아보실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 써 내려갔다.

큼직한 들통에 결대로 찢은 닭 살코기를 듬뿍 넣고 미리 잘게 다져둔 표고버섯과 당근 호박 대추채를 더했다. 맛과 영양에 더해 정성까지 고루 갖춘 닭죽이 완성됐다.

봉사자들이 전달한 도시락과 손편지.

봉사자들은 닭죽을 일회용 그릇에 푸짐하게 담아내고 아삭한 김치와 시원하게 잘 익은 수박을 디저트로 곁들였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정갈하게 챙겨 넣은 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올려 포장을 마무리했다.

“예수 사랑이 그늘진 곳까지 닿도록”

“오늘도 이 땅의 아픈 이웃을 향한 섬김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이웃들에게 소망과 회복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봉사단이 빗 속에 우산을 쓰고 쪽방촌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

국 목사의 기도가 끝나자 봉사자들은 카트에 음식을 차곡차곡 실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단단히 고정한 후 4명씩 조를 이뤄 쪽방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의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대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내부는 어둡고 곰팡이와 담배, 화장실 악취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천장 틈으로 스며든 빗물은 깜빡이는 전등을 타고 흘러내리며 위험을 드러냈다.

“어르신, 나섬 봉사단에서 나왔습니다.”

인사와 함께 김 소장이 문을 두드리자 조심스럽게 열린 문 사이로 한 노인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국 목사가 쪽방촌 이웃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

창문 하나 없는 3.3㎡의 남짓한 방 안은 통풍도 환기도 되지 않아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로 가득했다. 잠시 방 안을 둘러본 국 목사가 “저희가 영양죽과 수박을 준비해 왔습니다”라며 음식을 건넸다.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름진 손으로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이어 “교회를 다닌다고 들었는데 제가 잠시 기도해드려도 될까요”라는 국 목사의 이야기에 노인은 두 손을 모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국 목사는 그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고 육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기를 간구했다.

이날 18여 가정을 방문한 국 목사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쪽방촌 이웃들을 둘러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우리는 스쳐 가는 이들이지만 이곳에서 묵묵히 섬기는 분들의 헌신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비가 오는 날씨에도 수고해 준 봉사자들께 감사드린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 닿아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이 없도록 앞으로도 쪽방촌 사역을 나섬을 통해 지속,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나눔과 섬김의 재난법인 ‘나섬’

광야교회 소장 김형옥 목사는 이날 “조리 환경이 열악한 쪽방촌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간편식에 의존하고 그로 인해 필수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만성질환에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치료가 필요해지면 의료비 지출이 늘고 그만큼 생활비가 줄어 다시 식사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늘 준비한 닭죽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특별식”이라며 “해마다 잊지 않고 쪽방촌을 찾아와주는 나섬 봉사단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여의도침례교회는 2019년 종교법인 ‘나섬’을 설립했다. 법인 설립은 교회가 재정을 직접 집행하고 운영함으로써 복음에 기반한 나눔과 섬김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단발성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대하고, 교회가 책임 있는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나섬의 대표적인 구호사업엔 ‘청년1379(자립준비청년 지원)’과 ‘어르신1379(독거노인 지원)’ 사업, 그리고 지난해부터 시작한 ‘다시 내집 re:home(주거환경 지원)’ 사업이 있다. 이날 방문한 쪽방촌 사역을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 NGO 정기후원사업 등도 나눔과 섬김을 위해 꾸준히 힘을 쏟아온 주요 사업들이다.

여의도침례교회 성도들을 주축으로 한 약 90여명의 봉사자들이 나섬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구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들여 이웃을 섬기고 있다.

국 목사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라며 “지역 내 소외된 이웃을 비롯해 어린이부터 노인 다양한 취약계층을 돌보기 위해 지자체와 여러 구호기관과 협력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