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문성모 (25·끝)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 은혜”

입력 2025-06-27 03:04
문성모(왼쪽 앞줄 다섯 번째) 목사가 2016년 경기도 광주 서울장신대 해성홀에서 열린 훈장 전수식에서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문 목사 제공

연재를 마치며 나의 삶을 뒤돌아본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진 삶이었다. 나는 목사 안수를 받고 바로 독일로 유학해 10년을 공부하며 살았다. 그리고 귀국해 30년을 총장과 목회자라는 직함으로 사역했다. 귀국해서 호남신학대 교수로 2년을 보내고, 광주제일교회 목회 5년, 대전신학대 총장 6년, 서울장신대 총장 8년, 그리고 강남제일교회 목회 8년의 사역이 이어졌다.

30년의 사역 기간 중 가장 길고 중요한 황금기에 나는 총장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나를 ‘문 총장’으로 부른다. 내 사역의 가운데 토막에 총장으로 살았기에 사람들의 뇌리에 총장이라는 직함이 더 강하게 각인돼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나는 목회자로 살았다. 내 목회자로서의 사역 기간은 초기의 광주제일교회와 마지막 강남제일교회를 합치면 13년이 된다. 그리고 그사이에 모(母)교회인 숭덕교회의 설교 목사로 5년을 담임목사처럼 지냈으니, 목회자로서의 사역에도 긴 시간을 보냈다. 목회는 나의 삶에서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와 오메가였다. 또한 총장 시절에도 학교 새벽기도회를 쉬지 않았고, 채플 설교의 많은 부분을 내가 맡았다. 나는 학교를 경영함에 있어서 행정 책임자로서보다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내 이미지를 굳히며 사역했다.

나는 설교자로 살았다. 교회를 목회할 때보다도 학교 총장으로 사역할 때 오히려 설교를 더 많이 했다. 내가 기획하고 부탁하지 않았으나 계속 설교 요청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하루에 장소를 옮겨가며 4번을 설교한 적도 있고, 연속되는 부흥회 사경회 수련회의 강사로 초빙돼 설교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의 정체성은 설교자이다.

나는 목사 인생 40년 동안에 성전을 세 번이나 건축했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의 성전 건축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하나님은 나에게 세 번이나 건축을 허락하셨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첫 번째는 광주제일교회 성전 건축이고, 두 번째는 대전신학대학교 예배당(글로리아홀) 건축, 그리고 세 번째는 서울장신대학교 예배당(해성홀) 건축이다.

나는 작곡가로 살았다. 특히 찬송가를 400곡 가까이 작곡하고 시편송을 66곡 완성한 것은 나와 같은 세대의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로 보람과 사명을 느낀다. 앞으로 찬송가 1000곡 이상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시인으로 살았고, 캘리그리피 예술 작가로 작품을 만들며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귀한 선물로 감사한다. 나는 건강해서 한 번도 정해진 설교를 거르거나 사역을 중단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성인병도 없고 병원 신세 한 번도 진 적 없이 건강하게 산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수상, 장로회신학대학교 장한동문상(신학자 부문), 한국음악상(본상), 서울음악대상 등 상도 많이 받았으니 과분한 축복이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으로 글을 마친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