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식물처럼 사랑하라

입력 2025-06-27 00:33

며칠 전 황리애 번역가가 선물한 고양이 허브 키트에 씨앗을 심었다. 이름은 ‘보리’. 화분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어쩌면 작은 관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손바닥만 한 화분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 모른다.

먼저 물받이에 물을 채우고, 심지를 화분 아래에 끼웠다. 심지가 젖어들며 물을 천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동봉된 배양토에 물을 붓자, 흙이 조용히 부풀었다. 씨앗이 너무 작아 손으로 잡히지 않아, 이쑤시개로 살며시 흙을 헤치고 씨를 뿌렸다. 가볍게 흙을 덮은 뒤, 분무기로 표면을 적셨다. 마지막으로 랩을 씌워 화분을 밀봉하고, 따뜻한 바닥에 놓았다.

첫날 밤, 겉으론 아무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흙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시작되었으리라. ‘물을 너무 많이 줬나?’ 걱정했지만 랩 안쪽에 물집처럼 작은 습기가 맺혀 있어 안심했다. 그건 정말 작은 숨이었다.

이틀째 밤, 흙 위로 연둣빛 돌기 하나가 솟아올랐다. 자세히 보니 조그만 떡잎 두 장이 마치 서로의 주먹을 맞댄 듯 붙어 있었다. 그건 아주 천천히 벌어졌다. 떡잎은 빛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햇빛은 움직이지 않지만 식물은 언제나 그쪽을 향한다. 하루는 바깥쪽, 다음 날은 안쪽으로 화분 방향을 바꿔줬다. 허리가 휘지 않게, 중심을 잃지 않도록. 칙, 칙. 물을 뿌린다. 맑은 물 한 방울조차 이겨내지 못할 만큼 여린 싹은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을 들어올린다. 태양을 향해. 그건 식물이 태양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조용하고도 우아하다.

관계는 가꾼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또한 방향을 잃지 않도록 보살피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을 주는 일뿐 허브가 자라는 일은 허브의 몫이다. 삶도 그런 식이면 좋겠다. 정해진 속도는 없지만 정해진 방향은 있다고 믿으며. 지켜보는 마음이 지키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믿으며.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