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대도 아니라 난데없기까지 하다. 사태는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평창동 전시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서 지난 3월 6일 시작한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7월 27일까지)를 앞두고 담당 학예사가 추후 발간될 전시 도록에 싣기 위해 지난해 11월 중순 원고를 청탁하면서 시작됐다.
그사이 계엄정국이 시작됐다. 남웅 미술평론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미친 부정적 파장을 담은 글을 1월에 제출했고 곡절 끝에 3월에 최종 게재 불가 통보를 받았다. 남씨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제정한 세마-하나 평론상을 2017년 받고 미술계에 등단한 소장 평론가다.
이 사실은 남씨가 지난 4월 웹진 등에 공개하면서 공론화됐다. 당사자도 동료 비평가들도 사실상 검열이라며 비판했다. 특히 지난달 20일 일부 언론에 보도되며 파장이 커졌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몰랐다”며 “관계자와 평론가 사이에 소통상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해명했을 뿐이다.
미술관 측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한 달여 뒤인 지난 19일이다. 세마-하나 평론상 수상자 전원이 동조 비판에 나선 뒤였다. 미술관 측은 “특정 정치적 사건이나 관점을 이유로 원고를 배제할 의도는 없었다”며 “원고가 전시 기획 의도와 해석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평론가와의 소통이 세심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논란을 심도 있게 재검토해 필자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고, 오는 12월 발간 예정인 도록에는 성명, 논평, 언론보도 등 다양한 비평적 목소리를 함께 담겠다”고 했다.
하지만 불씨를 끄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검열에 반대하는 예술인 연대’라는 이름 아래 예술가들의 연대 서명이 시작됐다. 25일 현재 양혜규 전소정 임흥순 등 700명 가까이 동참했다. 미술관 측의 사과와 도록 수록 및 제도적 보완 약속에도 사태는 왜 가라앉지 않는 걸까. 검열이 아니라 편집권 행사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서울시립미술관이 올해 내건 의제가 ‘행동’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해당 전시 역시 사회적 실천으로서 아카이브(기록)의 역할을 조명하는 기획이었다. 청탁 내용도 ‘동시대 사회 이슈에 개입하는 작업에 관한 글’ ‘기관의 실천이 행동과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가를 묻는 글’ 등이었다. 그러니 우리 시대 최대 이슈인 계엄을 소재로 한 남씨의 글은 청탁 취지와도 맞는다. 남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1월 중순 처음 원고를 보여줬을 때 담당 학예사가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2월에 다시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게재가 어려울 거 같다. 하지만 (수록되도록) 좀 더 피력해 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곤 3월에 최종 게재 불가 입장을 통보받은 것이다.
남씨는 “미술관이 검열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검열을 소통의 오해로 둔갑시키고 그간의 과정을 ‘다양한 비평적 목소리’의 하나라며 도록에 실어준들 그건 우리의 실천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사안의 핵심은 이번 사태가 검열인지 인정 여부다. 검열의 사전적 정의는 이랬다. “공권력이 어떤 내용의 표현이나 공개를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검열은 신문·잡지·서적·라디오·텔레비전·영화 등 여러 매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사 등을 통해 내용 발표 자체를 막는 것은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
미술관 관계자 A씨는 “검열이 맞는다”는 의견을 냈다. 미술관 안에서는 누가 검열 여부를 말할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수장만이 할 수 있다. 불길은 꺼지지 않는데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보이지 않는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