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할 나이에 마다가스카르 선교사로… “이젠 오지서 복음 전하는 구급대원이죠”

입력 2025-06-26 03:03
최봉진(오른쪽) 선교사와 아내 김광숙 선교사가 24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마다가스카르 선교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브리카빌 마을.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차로 8시간을 달려 들어가야 하는 오지다. 마을의 유일한 이방인인 최봉진(72) 선교사가 바게트가 담긴 자루를 메고 나타나면 맨발의 아이들이 “파스테루(목사님)”라 외치며 환하게 달려온다. 빵을 잘라 나눠줄 때면 “미누 제수시, 마하주 라니트라(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건넨다.

3년 전,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최 선교사는 머나먼 마다가스카르를 선교지로 택했다. 젊은 시절 119 구급대원으로 화염 속에서 생명을 구하던 그는 인생 2막에 메마른 땅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헌신을 하고 있다.

24일 국민일보와 만난 최 선교사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니 감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한 달여간 머무른 그는 이날 밤 다시 아내 김광숙(70) 선교사와 마다가스카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 전 일본 선교를 준비하던 최 선교사는 마다가스카르에서 10년간 사역한 김홍섭 선교사가 후임을 구한다는 걸 알게 됐다. 현지를 답사했지만 그곳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이유 없이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병상에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을 따라 소명을 깨달았다.

그렇게 마다가스카르로 향한 그가 사역하는 곳은 ‘오차로구미교회’다. 주일이면 200여명의 현지인으로 가득 찬다. 처음엔 현지어인 말라가시어를 전혀 못 했지만 매주 한글 설교문을 현지어로 번역한 뒤 발음을 한글로 표기해 통째로 외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제는 또렷한 말라가시어가 줄줄 나온다.

최 선교사가 마다가스카르 브리카빌 오차로구미교회 앞에서 성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앞줄 아이들은 세례 증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 선교사 제공

진심이 통했는지 마을 사람들은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아와 기도를 부탁한다. 이곳에도 아픔이 있었다. 지난 2월 동료 선교사 2명이 현지 강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최 선교사는 “사건 이후 순수하게만 보였던 현지인들이 다르게 느껴지면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불안을 알아챈 교인들은 “목사님, 우리 브리카빌 사람들은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다”라며 위로했다. 교인들의 위로가 큰 힘이 됐지만 낯선 환경과 싸움은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는 “폐소공포증이 있고 어두운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전기도 잘 안 들어오는 곳에서 어떻게 있나 싶을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솔직히 ‘하나님, 힘듭니다. 죽겠습니다’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하곤 한다”며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후원을 받지 않고 자립 선교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아내 김 선교사가 재정을 뒷받침하고 1년에 한두 차례 현지를 방문해 남편의 사역을 돕는다. 김 선교사는 “나이 들어 자녀에게 의지하기보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부부가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