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22일 끝났다. 올해 도서전은 특히 뜨거웠다. 입장권 15만장 전체가 얼리버드(온라인 선예매)로 매진됐고, 도서전이 열리는 5일 내내 오픈런이 펼쳐졌다.
토요일인 21일에도 그랬다.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도착했는데 이미 대기 줄이 몇 겹이나 늘어서 있었다. 지난해에도 도서전 입구에 만들어진 젊은이들의 긴 줄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뒀다. 도서전 기념품을 파는 아트숍은 점심시간에 이미 ‘매진’ 안내판을 내걸고 있었다. 얼굴을 아는 출판사 대표들은 손님 응대에 바빠 대화 나눌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사실 도서전이란 게 그다지 흥미로운 행사가 아니다. 빽빽하게 늘어선 수백 개의 출판사 부스를 돌아다니며 책을 구경하는 일은 지루하고 피곤하다. 해외에서도 초대장을 뿌리고 할인 판매를 하고 학생들을 동원해 겨우 사람을 모으는 도서전이 적지 않다. 그런데 서울국제도서전은 힙하다. 젊은 관람객들의 활기 속에서 작가들, 유명인들, 신간들, 굿즈 등을 만나는 재미가 가득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처음 방문했다는 대만 소설가 천쉐는 “도서전이 매우 창의적이고 컬러풀하다”면서 “마치 볼거리가 풍부한 한국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평했다. 다만 앉아서 쉬거나 식음료를 즐길 만한 공간이 부족한 게 여전히 아쉽다.
올해 도서전의 하이라이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참가였다. 전직 대통령이 도서전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도서전에서 초청한 것도 아니다. 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 차린 서점인 평산책방이 도서전 참가를 신청했을 때도 문 전 대통령이 현장에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책방 주인 자격으로 도서전에 참가했다. 이틀 연속 도서전에 나와 평산책방 부스에서 책을 판매했다. 또 저자와의 대화, 시낭송회, 시상식 등에 참석했고 크고 작은 출판사 10여곳을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1인 출판사 무제를 설립한 영화배우 박정민도 도서전에 부스를 내고 신간 소설을 팔았다. 마지막 날엔 윤석열 탄핵 심판을 맡았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도서전을 찾아 강연했다.
반면 출판 진흥을 책임진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전에서 볼 수 없었다. 올해 도서전은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문체부 지원 없이 열렸다. 해마다 문체부 장관이나 차관이 와서 축사를 했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었다. 2023년 7월 박보균 당시 문체부 장관은 국고 보조를 받는 서울국제도서전의 수익금 정산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를 벌이고 도서전 관계자들을 수사 의뢰했다. 그리고 이를 핑계로 도서전에 대한 지원을 끊어 버렸다. 도서전을 운영해온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수익금 처리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지원금 중단을 문체부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협회에 대한 압박으로 규정했다. 이어 정부 지원 없이 도서전을 이어가기 위해 운영사인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을 설립했다. 올해는 주식회사 체제로 개최한 첫 도서전이기도 하다.
문체부는 지금까지 도서전 수익금 비리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출협 회장과 도서전 대표에 대한 수사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쪼그라들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도서전은 2년째 출판계와 독자들의 힘으로 성장하면서 강력한 문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그래도 안을 들여다보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도서전이라는 비전에 걸맞은 국제성을 확보하는 데 힘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새로 임명되는 문체부 장관은 전 정권에서 불거진 도서전 지원 문제를 점검하고 신속하게 풀어야 할 것이다.
김남중 편집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