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추억들을 부르지/ 차갑게 굳어 버린 줄만 알았던 내 맘 무색하게.’ 가수 김동률이 2012년 발표한 ‘그 노래’의 한 구절이다. 노래는 때로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 누군가는 흥에 들뜨고, 누군가는 슬픔에 젖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노래 한 곡이 누군가를 다시 교회로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 30년 지기 Y와 통화를 했다. 우리는 같은 교회에서 자랐고 찬양팀에서 함께 연주하던 사이였다. 그의 드럼은 리듬감보다는 운동신경에서 비롯된 듯했지만 함께할 땐 이상하게도 잘 맞았다. 그런 Y는 10년 전쯤 교회를 떠났다. 돈벌이, 육아, 관계의 무게 속에서 신앙의 우선순위는 점점 멀어졌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비단 Y만의 일은 아닌듯하다. 지앤컴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19세 이상 교회 출석 기독교인 2000명을 대상으로 ‘연령대별 가장 중요한 과제’를 물었다. 장년기(35~49세) 응답자 가운데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을 꼽은 비율은 12%에 그쳤다. 자녀 양육(21%) 건강(17%) 재테크(16%)보다 낮은 수치였다.
Y의 마음을 다시 붙잡은 건 뜻밖에도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었다. ‘크리스천 팝’이라 불리는 현대 기독교 음악이다. “형, 그래도 나 CCM은 들어.” Y가 소개한 곡은 예람워십의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였다.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가사에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란 말은 없었다. Y는 “짐을 함께 지고 걸어가는 하나님을 떠올렸다”며 “이상하게 다시 교회에 가고 싶어지더라”고 말했다.
이런 고백은 온라인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알바스찬’의 인기 콘텐츠 ‘2000년대 수련회를 불태운 찬양 메들리’는 3부작으로 공개돼 누적 조회수 약 600만회를 기록했다. 디사이플스의 ‘불을 내려주소서’ 소리엘의 ‘나로부터 시작되리’ 등 수련회 현장을 달궜던 곡들이 연이어 연주된다.
댓글엔 진심 어린 고백들이 보인다. “신앙도 찬양도 열정이 식어 외면하고 있던 한 사람입니다. 영상 덕분에 그 시절의 열정이 떠올라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교회 떠난 지 몇 년인데 이 영상 보며 따라 부르다 눈물이 났어요.” “알겠어요. 교회 나갈게요.”
신앙인에게 찬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자 영성을 회복하는 숨이다. 이천진 한양대 교목실장은 ‘찬송과 영성’(신앙과지성사)에서 “서양 음악의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 자체가 신성과 관계된 이름”이라며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회중 찬송을 회복한 것도 ‘끊어진 영성의 숨’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였다”고 주장한다.
지인 H는 찬양으로 끊어졌던 영성의 숨을 되살렸다고 했다. 40대인 그는 올해 초 다니는 교회의 부탁으로 예배 찬양 드럼 반주를 맡았다. 20년의 연주 공백을 메우려 주중에도 틈나는 대로 송 리스트를 들으며 손과 귀로 찬양을 익혀갔다. H는 “계속 듣고 치다 보니 잊고 지낸 신앙의 순수함이 올라오더라”며 “그렇게 찬양에 폭 잠긴 6개월 동안 음주가 줄었고, 성경 통독을 시작했으며,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도 회복됐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건 이번 취재에서 만난 30~40대 남성지인 8명 모두가 교회와 거리를 둔 지금도 ‘찬양만큼은 마음을 움직인다’고 고백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응답을 듣다 보니 마치 누군가 이번 칼럼의 주제를 은근슬쩍 ‘찬양’으로 밀어 넣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찬양의 울림이 신앙의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공동체 안에서의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 소리 없는 청중으로 머무르던 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찬양은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실험을 시작해보려 한다. 듣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부르는 자리로 나아가려 한다. 교회를 떠난 친구들을 다시 불러 모아 함께 찬양을 해보려 한다. 작은 연주팀도 꾸릴 생각이다. 다행히도 8명 중 5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 칼럼을 통해 천천히 풀어갈 생각이다. 지금 나는 노트북을 덮고 Y에게 전화 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드럼이야. 난… 기타를 칠게.”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