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산업을 위협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공급망 불안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을 주력 수출 시장으로 삼고 있지만 정작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 보니 중국의 공급망 통제나 미국의 ‘탈(脫)중국’ 정책 등 미·중 갈등에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다. ‘기회의 땅’ 아프리카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4일 발간한 ‘아프리카 광물 확보 경쟁 속 주요국 전략과 한국의 대응 방향’ 보고서에서 아프리카에 리튬, 코발트, 흑연,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고 소개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코발트, 망간 매장량이 가장 많다. 마다가스카르는 흑연 매장량이 세계 2위, 짐바브웨는 리튬 매장량이 세계 4위다.
이런 잠재력에 일찍 눈을 뜬 건 중국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2000년대부터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다자 협력체인 아프리카협력포럼(FOCAC)을 발족하고 외교부장(외교부 장관)의 새해 첫 순방지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택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이에 힘입어 짐바브웨에선 리튬 농축분, 모잠비크에서는 흑연, 콩고에서는 코발트 등 아프리카 각국에서 배터리 재료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뒤늦게 아프리카 광물 시장 진출에 나섰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2023년 모로코에서 현지에 진출한 중국 업체와 협력해 LFP 배터리용 양극재 공장을 설립하거나 현지 수산화리튬 생산에 협력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마다가스카르와 탄자니아 소재 흑연광산에 투자했다. 하지만 정부나 공공 차원의 지원은 한국광해광업공단이 포함된 한국 컨소시엄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 지분 보유에 나선 것 외에는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아프리카와의 협력 기반 마련에 있어 한국은 갈 길이 멀다. 다만 아프리카 광물 채굴 과정에서 중국 업체들이 여러 차례 환경 파괴나 인권 침해 등 논란에 휩싸였던 점이 역으로 한국에 기회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2021년 8월 콩고 정부는 환경 훼손과 불법 채굴 등에 대한 주민 항의를 이유로 중국계 광산회사 6곳을 추방한 바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중국에 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뛰어난 정·제련 기술력과 배터리 산업 제조 역량도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상호보완적 협력이 가능한 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소영 수석연구원은 “우리 배터리 산업이 직면한 리스크 극복에 아프리카와의 광물 협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고위급 순방 확대와 동시에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