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이 번쩍이는 순간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이 손끝에서 춤춘다. 무엇이든 묻기만 하면 답이 쏟아지고 요청하면 그림도 동영상도 피어난다. 밤하늘의 별이든, 사랑에 빠지는 화학반응이든, 수천년 전 철학자의 목소리조차도 클릭 한 번이면 소환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토록 풍성한 정보의 잔칫상 앞에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완벽한 답변들 사이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허기져 간다. 마치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배를 채우다가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이상하게 가슴이 안 움직인다. 정보는 많아졌는데 질문은 줄었고 지식은 늘었는데 지혜는 낯설다. 내면의 깊이가 얕아진 것이다.
그래서 책을 펼쳐야 한다. 인공지능(AI)가 발달할수록 독서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기계가 줄 수 없는 것들, 깊이 있는 사유, 상상력, 인간다운 성찰, 느림의 미학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든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크리스티앙 보뱅은 이렇게 말했다.
“책 앞에서, 자연이나 사랑 앞에서 당신은 스무 살이나 다름없다.”(‘작은 파티 드레스’ 중에서)
사랑 앞에 서면 누구나 스무 살이 된다. 자연 앞에서도 우리는 겸손한 스무 살이 된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독서하는 사람도 스무 살로 돌아간다고 한다.
AI는 묻는 대로 답하지만 책은 묻지 않은 마음까지 만진다. AI는 문제를 풀고 책은 존재를 끌어안는다. AI는 정보를 주지만 책은 이유를 말해준다. AI는 필요한 걸 알려 주지만 책은 몰랐던 것과 잊고 있던 것을 꺼내준다. AI는 1초 만에 답을 주지만 책은 평생 곱씹을 여운을 남긴다. AI는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책은 나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위로한다.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문해력이었다면 AI 시대의 문해력은 AI에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것이 능력’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신종 직업이 있다. AI가 최상의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도록 최적의 질문이나 지시어(프롬프트)를 설계하는 전문가다.
AI는 대답을 하지만 질문은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질문이 얕으면 답도 얕아진다. 좋은 질문은 어디선가 읽은 울림 깊은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AI와 동행해야 하는 시대다.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은 AI에 최상의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최상의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이다.
책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일반 은총 중의 하나다. 성도들은 ‘성경’과 ‘책’을 통해 영성 지성 감성이 조화롭고 풍성하게 성장할 수 있다. 바울은 감옥에 있을 때도 디모데에게 공부를 위한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이에 대해 찰스 스펄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성령의 영감을 받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설교했고 웬만한 사람보다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하늘까지 올라갔다가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듣고 돌아온 사람이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썼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설교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독서에 힘쓰라.’”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