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과 그저 함께 사는 게 선교입니다”

입력 2025-06-25 03:03
이미애 선교사가 최근 대전 동구 한 카페에서 브라질 캄푸그란지에서의 30년 선교를 얘기하고 있다.

별명이 ‘록구 프라 인디오’(인디언에 미친 사람)이다. 1995년 총회세계선교회(GMS) 파송으로 브라질에 건너간 이미애(61) 선교사는 그곳에서 30년 동안 현지인과 어울려 살고 있다. 브라질 중서부 캄푸그란지가 사역지다. 최근 방한한 그를 대전 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캄푸그란지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차로 4시간가량 달려야 나온다. 이 선교사는 그곳에서 ‘베다니 에스콜라’를 운영하고 있다. 캄푸그란지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탁아소로 시작한 뒤 현재의 초등학교로 성장했다. 150여명의 학생이 이 미션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다.

베다니 에스콜라 학생과 교사가 졸업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 선교사 제공

이 선교사는 “브라질 토착민 마을을 돌며 여성을 대상으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진행했다”며 “당시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는데 어머니들이 내게 아이들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긴 시간 브라질 선교에 헌신한 이 선교사가 신학교에 다닐 때 첫 선교지로 기도했던 곳은 브라질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감비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이후 그 나라를 첫사랑처럼 기도하며 준비했다고 했다. 선교사 훈련과 기도 훈련을 받으며 5년이 지났지만 이 선교사를 아프리카로 파송하는 교회도, 불러주는 선교사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선교사를 초청한 곳이 브라질이었다. 이 선교사는 “당시 아프리카 선교만 준비했기에 ‘브라질은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했다”며 “그로부터 얼마 뒤 두 번의 초청이 더 왔는데 모두 브라질이었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에서만 세 번의 초청을 받고 나니 ‘브라질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타지에서 홀로 선교하며 외로울 때도, 재정적 어려움으로 선교지에서 철수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저 그들과 함께 살라”는 선배 목회자의 조언을 기억했다. 이 선교사는 “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에 선교비가 절반으로 줄면서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며 “그때 만난 최영기 미국 서울침례교회 목사님이 ‘현지인들과 그냥 살면 됩니다’라고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이 선교사는 무작정 캄푸그란지의 현지인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지내며 언어를 익히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이 선교사는 예수님 닮은 삶이 선교의 목표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저는 이룬 게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한 선교가 아니죠. 그렇지만 브라질에서의 선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바로 예수님 닮은 삶이었습니다.”

대전=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