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테헤란로

입력 2025-06-25 00:40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자리한 ‘테헤란로’에는 한때 IT 기업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IT 기업들이 너도나도 판교로 떠나면서 현재 그 자리에는 K뷰티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K뷰티 열풍에 급성장한 뷰티 기업들이 테헤란로에 속속 입성하고 있는 것이다. 테헤란로는 강남역에서부터 삼성역 인근까지 왕복 10차로, 길이 4.1㎞, 너비 50m 도로를 말한다. 원래 이름은 ‘삼릉(三陵)로’였다. 삼릉은 조선 성종·정현왕후의 묘인 선릉과 아들 중종의 묘인 정릉을 합친 말인데, 1972년 서울시가 이 길을 낼 때 인근에 삼릉공원이 있어 삼릉로라 이름 지었다.

강남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녹색과 흰색,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이란 국기를 볼 수 있다. 표지석에는 ‘서울·테헤란 양 시와 양 시민의 영원한 우의를 다짐하면서 서울시에 테헤란로, 테헤란시에 서울로를 명명한다’라고 적혀있다. 삼릉로가 테헤란로로 바뀐 것은 1977년 6월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의 방한이 계기가 됐다. 닉페이 시장은 서울시와의 자매결연식에서 우의를 다지자는 뜻에서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두 도시에 서로의 이름이 들어간 도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 1차 오일쇼크로 석유 도입이 막힌 우리에게 이란은 원유를 공급해 준 고마운 국가였다. 1976년에는 하루 6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한다는 협정도 체결해 줬다. 그렇게 해서 삼릉로가 테헤란로로, 테헤란의 메라트공원로가 ‘서울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영어 표기는 ‘Tehran’이다. 하지만 테헤란로 표지판에는 영어로 ‘Teheran’으로 쓰여 있다. 한국 발음을 존중해 그렇게 표기했다고 한다.

이란은 2017년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한국의 원유 공급처였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봉쇄에 따라 그 후 수입량은 급격히 줄었고, 현재 한국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48년 전 테헤란로에 새겨진 의미처럼 이란이 고마운 나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