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꽃내음

입력 2025-06-26 03:08

사람들이 꽃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의지하는 감각은 아마도 ‘시각’일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끌려 꽃을 고르는 일은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꽃이라는 선물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은 ‘향기’입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꽃 앞에 다가가 은은한 향기를 맡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자연이 준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예술이며 생명의 향연입니다.

봄은 꽃으로 시작되고 꽃내음으로 완성됩니다. 그 향기가 온 땅에 퍼질 때 우리는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여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저는 달맞이꽃의 향을 맡는 즐거움에 빠져 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은은한 향을 아낌없이 내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존재도 이와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란하지 않게 은은하며 선한 향기를 계속 뿜어내고 계십니다. 그분의 손길과 임재는 들꽃 하나에도, 스치는 바람에도, 일상의 순간 속에도 스며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종종 이 향기를 악취로 바꿔 버리곤 합니다. 얼마 전 방문한 경북 영덕에는 산불 이후 매캐한 재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기후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기후위기의 결과로 봅니다. 산불뿐만 아니라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의 화약 냄새, 오염된 강과 바다의 악취, 그리고 도시의 미세먼지와 매연 냄새까지. 이 모든 악취는 결국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훼손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체 같은 우상으로 내 땅을 더럽히고 있다’(렘 16:18)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이 오늘 우리에게도 울립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향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악취도 하나님의 향기를 완전히 덮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북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모금이 이어지고 있고 수많은 성도들이 그 땅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한 치킨집 사장님은 매달 30마리의 치킨을 튀겨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또 몇몇 집사님들은 가나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빵과 디저트를 굽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방에서 퍼져나가는 그윽한 냄새야말로 하나님의 향기가 아닐는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를 내뿜어야 합니다.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기계와 화약 냄새나는 무기들은 내려놓고 서로의 마음에 꽃을 심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지고 악취가 짙어질지라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향기를 흠뻑 풍겨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는 낯선 이들을 함부로 꺾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꽃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꽃은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답고 향기도 짙어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엡 5:2·새번역)

김기중 함께하는교회 목사

◇김기중 목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사로 활동했으며(2014~2020) 현재는 노숙인들을 섬기는 ‘Night Meals Community(밤한끼)’ 대표이자 함께하는교회에서 아프리카 이주민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침례신학대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친 뒤 남아공 스텔렌보스대에서 조직신학으로 신학석사(ThM)와 박사 학위(PhD)를 취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