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실수할 권리와 자기위로

입력 2025-06-25 00:32

부모교육 강연을 다니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요?”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세요. 실수할 수 있을 때 아이는 가장 잘 자랍니다.”

그러면 곧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돌아온다. “배우기도 바쁜데 실수를 하라고요? 그러다 잘못되면 어떡하죠?” 그 걱정 속에는 ‘혹시 우리 아이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모의 불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한 번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수야말로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안다. 처음에는 그저 의미 없는 옹알이로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 “아빠” 같은 말을 하게 되고, 점점 단어가 늘어난다. 단어 몇 개를 연결해 문장을 만들 때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 이어진다. “먹어, 밥.” “싫다, 나.” “집 간다.” 아이는 이런 말들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나는 집에 간다”를 완성해 낸다. 말을 배우는 과정 전체가 실수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실수들이 쌓여 우리는 비로소 문명의 이기인 언어를 배운다.

그렇다면 실수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실수를 어떻게 되돌려 줄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둬야 한다. 아이는 말을 할 때마다 부모의 눈을 쳐다본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묻는 눈빛이다. 부모는 아이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애쓰고, 부족한 표현을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아이가 겨우 낸 말을 기다려주고, 그 시도가 얼마나 멋진지 알려준다. 부모의 따뜻한 눈빛을 받은 아이는 기뻐하며 또다시 실수할 준비를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세상이 믿을 만한 곳이라는 걸 배우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실수를 멈출 때가 있다. 그건 부모의 차가운 시선을 느낄 때다.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왜 그것도 몰라?” 같은 말들이 쌓이면 아이는 실수를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틀리지 않을 것 같은 말만, 칭찬받을 만한 행동만 하려 한다.

그 순간 아이의 성장 가능성은 멈춰버린다. 자기를 불완전한 존재로 판단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상적이지 않은 진짜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감춘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불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아이는 지금껏 자신이 잘한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더 잘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커서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속상해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만 즐거운 사람이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삶 전체가 실수의 연속이다. 삶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들로 가득하다. 처음 걷는 날에도 넘어지고, 처음 숟가락을 쥘 때도 밥을 흘린다. 공부도, 관계도, 사랑도, 심지어 나이 들어가는 것도 우리는 모두 처음 해보는 일들이다. 그런 점에서 실수는 잘못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고,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바탕으로 실수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완성시킨다. 말을 실수하더라도 부모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언어를 완성해 내듯 말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이 실수투성이고,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실수했어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오늘 너는 또 한 걸음 내딛고 있잖아. 너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냈으면 좋겠어.”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