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도 1건 취급”… 쿠팡 ‘합포장’에 배송 기사들 한숨

입력 2025-06-24 00:20 수정 2025-06-24 00:20

쿠팡 배송 기사인 40대 A씨는 최근 혼자 다루긴 힘들 정도의 무거운 물품을 옮기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떨어져 액정이 파손됐다. 물건을 살펴보니 신라면 40개가 든 상자 2개가 하나의 비닐에 ‘합포장’ 돼 있었다. 이제까지 라면 상자는 부피가 커 별도 포장 없이 상자째 배송하곤 했다. A씨는 “최근 합포장이 늘어 힘들다. 상품을 옮기다 보면 허리에 크게 부담이 갈 정도”라고 말했다.

A씨뿐만이 아니라 최근 쿠팡 배송 기사들 사이에선 쿠팡이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과도하게 합포장을 늘리고 있다는 원성이 나오고 있다. 많은 상품을 테이프로 붙이거나 하나로 묶은 합포장 물품은 늘고 있지만, 이런 물품을 옮기는 배송 기사가 손에 쥐는 돈은 1건에 해당하는 운임뿐이다. 쿠팡이 물건의 무게나 부피와 관계없이 배송 건수에 따라 운임료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송 기사들은 30㎏에 달하는 물품도 추가 운임도 받지 않고 옮기곤 한다.

2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은 최근 크거나 무거운 물건을 담을 때 쓰는 배송 포장재 ‘MPB6·7’과 ‘헤비박스’를 도입했다. 이 중 MPB는 두껍고 질긴 비닐봉지로, 원래 5호까지 있었으나 최근엔 이보다 큰 6호와 7호가 만들어졌다. 헤비박스는 탄탄한 재질의 종이 상자에 무거운 내용물을 담은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변화엔 배송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쿠팡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배송 기사들은 무거운 제품을 합포장한 경우가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무게가 10㎏에 달하는 500㎖ 음료수 20개들이 상자 3개(총 30㎏)를 한 봉지에 담거나, 하나에 12㎏이 넘는 A4용지 2500매입 상자 2개(총 24㎏)를 한 상자에 담는 식이다. 그동안 쿠팡은 이런 제품을 주로 개별 배송했다.

쿠팡의 합포장 행태는 다른 업체들과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예컨대 네이버·SSG닷컴·G마켓 등의 배송을 담당하는 CJ대한통운은 물건이 무겁고 클수록 높은 운임을 매긴다. 합포장한 물품의 무게도 최대 15~20㎏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를 넘기면 두 개 이상의 박스에 나눠 배송한다. 쿠팡이 배송 기사에게 추가 운임 없이 최대 30㎏의 물품까지 맡기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무리한 합포장으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 배달해야 하는 제품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워 배송 도중 파손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포장 상자나 비닐이 찢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고, 통조림 캔이 찌그러지고 세제 통이 깨지는 등 내용물이 손상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곤 한다.

합포장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이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 포장 없이 배송할 수 있는 물건을 거대한 비닐 또는 상자로 다시 한번 포장하니 쓰레기가 더 생길 수밖에 없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업계 매출 1위인 쿠팡은 이제 이익 추구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며 “종사자의 안전 등 사회적 책임도 고려해야 기업 발전에 장기적으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 관계자는 “전국의 물류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여러 지역의 물류센터에서 출고되던 상품들이 한 물류센터에서 동시에 출고돼 배송되는 경우가 늘었다”며 “쿠팡은 친환경적 노력의 일환으로 과포장 문제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