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발표하며 ‘경제 살리기’ 총력전에 나섰지만 중동 사태가 연일 격화하며 한국 경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강대강’ 대립이 고조될 경우 국제유가와 금융시장이 요동치며 정부의 경기·물가 안정 관리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정세에 대한 불안감만으로 한국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유가 관리를 최우선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23일 중동 사태 관련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회의를 주재하고 “미국의 공습 이후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의결하는 등 향후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국내 석유류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다. 한국석유공사도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석유 수급 점검에 나섰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현재 보유한 비축유는 정부와 민간 부문을 합해 206일분을 넘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권고 기준인 90일분보다 많다.
그러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중동 사태 추이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시 국내 물가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란과 접한 호르무즈해협을 통하는 만큼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유가 급등은 불가피하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가 고조된 이날 오전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3.36% 오른 배럴당 76.32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도 79.49달러로 3.27% 올랐다.
전문가들은 중동 사태 추이를 예상하기 어려우므로 정부가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이번 여름이 더울 것으로 예상돼 식품가격 등 물가에 불안 요소가 많은 상황”이라며 “석유가격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유가가 물가에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석유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는 한편 국내 석유 사용을 줄여나갈 정책적 그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당장 소비자들의 불안심리를 완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7~8월 물가 상황을 지켜본 뒤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는 등 정부가 유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