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시설 공습에 대응해 이란이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추진하고 있다.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유가 상승으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국 정부와 해운업계는 해협 봉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초대형 유조선이 해협에 진입하지 않고 회항한 사례도 나왔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페르시아만 안쪽으로 향하던 초대형 유조선 2척이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서 항로를 정반대인 아라비아해 방향으로 되돌렸다. 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려 석유를 싣지 않고 회항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다 유조선 보유국인 그리스 정부는 이 해협 통과를 계획 중인 선박 소유주 등에 보낸 통지문에서 인근의 안전한 항구에서 대기할 것을 권고했다.
이란 의회는 전날 미군의 폭격 대응 차원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최종 결정권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결단만 남았다.
호르무즈 해협은 북쪽 이란, 남쪽 오만 사이에 위치한 좁은 해역이다. 가장 좁은 곳 폭이 약 33㎞에 불과하다.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은 대부분 이란 영해를 지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한 석유 운송량은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로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이란이 전면 봉쇄를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란 경제는 해협을 통한 석유 수출에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는 대부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특히 중국은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약 90%를 소화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란은 우호국 중국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해협 봉쇄는 자살행위”라고 말했다. 이란이 해협을 전면 봉쇄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다만 이란이 경제 타격을 감수하고 극단적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JP모건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동 분쟁 격화에 국제유가는 출렁였다. 브렌트유 가격은 한국시간 23일 오전 개장 직후 5.7% 급등한 배럴당 81.4달러까지 올라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상승폭을 반납해 76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