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호르무즈 봉쇄되나”… 숨죽인 국내 산업계

입력 2025-06-24 00:03
이란 의회가 자국 핵시설에 대한 미군의 폭격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한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형상의 피규어가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이 표기된 지도를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여파로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지나는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이 막힐 경우 당장 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 유가 상승은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기업들은 비용 상승 우려 속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비상이 걸린 곳은 정유업계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23일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국가적 에너지 안보 이슈이기 때문에 대한석유협회를 중심으로 민·관 합동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부와 함께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현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정유업계에서는 비축유 활용과 원유 대체 수입선 확보 등도 검토 중이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에 207일간 쓸 수 있는 원유가 비축된 만큼 단기적인 수급에는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봉쇄가 길어지면 대체 수입선을 찾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봉쇄가 장기화되면 미국 등 중동산 원유의 대체 수입선을 찾아야 하지만 우리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도 중동산 원유의 대체 수입선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원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때 60%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던 한국의 원유 수입 중동 의존도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시 70%를 웃돌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가가 치솟으면 석유화학 업계 역시 유탄을 맞게 된다. 국제투자은행 JP모건은 호르무즈해협이 차단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최대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석유화학 계열사를 주력으로 삼는 대기업들도 중동발 비용 상승 우려에 비상대응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해운업계 역시 직접 영향권에 들어 있다. 선박 공격 및 해협 기뢰 설치 등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선사들도 잇달아 항로를 조정하고 있다. 자연스레 해상 운임비용이 늘고, 장기간 물류 적체 등으로 인한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이란과 이스라엘 무력 충돌 이후 중동발 원유운반선(VLCC) 운임은 20% 이상 뛰었다. 김영한 성균관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해상보험을 활용해 해협 봉쇄에 따른 타격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미국과 이란 모두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봉쇄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봉쇄가 길어지면 미국 기업들의 피해도 커지기 때문에 미국도 갈등을 가급적 빨리 마무리지으려 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중동 정세에만 매몰되지 말고 기본적인 수출입 여력을 확대하는 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나경연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