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태우는 ‘불쇼’는 여전… 못 믿을 명품 친환경 선언

입력 2025-06-24 02:06
게티이미지뱅크

고가의 가방을 포함해 재고 상품을 대량 불태우며 ‘희소성’ 전략을 고수하던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최근 친환경 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샤넬 등이 재활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을 덮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그린워싱 방지법’ 돌연 폐기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의 실질적 책임이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는 상대적으로 규제가 낮은 수준이지만 제재 강도를 높이는 추세다.


23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샤넬은 이달 초 재활용 전문 법인 ‘네볼드(Nevold)’를 설립했다. 네볼드는 ‘네버 올드(Never Old)’의 줄임말로, 자투리 천과 미판매 재고 등을 재활용해 하이브리드 소재 등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투자금은 5000만~8000만 유로(약 790억~1270억원)에 달한다. 외부 브랜드 재고까지 처리하는 B2B(기업 간 거래) 영역으로 확장될 계획이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보유한 LVMH는 남은 원단을 재활용하는 ‘노나 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유사한 친환경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H&M과 유니클로를 비롯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재고와 중고 의류의 재활용을 통한 순환형 모델 강화를 추진 중이다.


패션산업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하는 고탄소 산업이다. 최신 유행을 반영해 대량 생산되는 패스트패션은 유행이 지나면 폐기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폐기물은 연간 1억t에 달한다. 재활용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녹색산업을 강조해온 EU 집행위원회는 2년 동안 추진해온 ‘그린워싱 방지법(GCD)’을 지난 20일(현지시간) 입법 직전 돌연 폐기했다. GCD는 친환경 문구 사용 전에 과학적 검증을 거쳐 승인을 받도록 하고,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EU가 ‘미판매 의류와 신발의 소각을 금지’하는 법안을 예고한 것과 상반된 결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결정을 두고 “기업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후 대응과 녹색 규제를 미룬 채,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기업 규제 완화 쪽으로 기조를 전환한 셈이다.


국내 그린워싱도 만만찮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국내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2020년 110건에서 지난해 2528건으로 5년 새 23배 가까이 급증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무신사, 신성통상(탑텐), 이랜드월드(스파오·미쏘), 자라코리아 등 4개 브랜드를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경고 조치했다. 2023년 공정위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뒤 내린 첫 제재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작됐지만, 현행 규제만으로는 더욱 교묘해지는 기업들의 그린워싱 수법을 모두 포괄하기엔 한계가 있다. 행정 조치를 구체화하고, 제재 강도를 높이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친환경 경영은 기업이 스스로 실천하고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며 “규제 중심으로 접근할 경우 사회 전반에 ‘그린’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발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재 강도를 높여가는 만큼 기업들도 발맞춰 내부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