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직접 만나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을 품고 북한 땅에 자발적으로 발을 디딘 한국인 선교사는 그 길로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2007년부터 중국 단둥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탈북민 구출에 앞장섰던 김정욱 선교사다. 당시 지하교회 설립 등 범죄 혐의를 자백하도록 강요받고 국가전복음모죄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아 북한에 억류된 지 12년. 이후 그의 소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 선교사 체포 약 1년 후, 북·중 접경 지역에서 꽃제비와 탈북민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등 인도적 지원에 힘쓰던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두 명이 북한 당국에 붙잡혀 갔다. 북한은 이들에게도 2015년 6월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이들의 소식이 끊긴 지도 꼬박 10년이 지났다.
한국에 돌아오지 못한 선교사 세 명의 세월이 기약없이 흐르고 있다. 북한 당국이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는 가운데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은 한국교회와 사회가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도해줄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김정욱 선교사의 동생 김정룡(58) 선교사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인터뷰를 갖고 “형님은 지금도 북한 어딘가에서 다니엘처럼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며 “그 기도가 쇠사슬에 묶인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의 통로가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24년째 교회 개척과 교도소, 종족 선교, 성경 보급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8남 1녀 중 세 형제가 선교사로 헌신한 가운데 남은 건 막내아들인 김 선교사뿐이다. 넷째 형은 라오스 선교 중 소천했고 일곱째 형인 김정욱 선교사의 소식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상태다.
김 선교사는 형의 마지막 모습을 선명히 기억했다. 2013년 큰딸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당시 선교 중이던 자신을 대신해 병원으로 찾아온 형은 조용히 기도만 남긴 채 이틀 뒤 북한으로 떠났다. 김 선교사는 형수가 “밤마다 기도하는 남편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을 정도로 형의 사명감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지금도 가족들은 매일 단체 대화방에서 형의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한다. 북한 억류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국교회의 유튜브 예배에도 꾸준히 참여 중이다. 김 선교사는 “하루 한 시간씩 형님을 위해 기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며 “북한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진영(35)씨는 2014년 12월 탈북민 지원 활동을 하던 중 납북된 것으로 파악된 최춘길 선교사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억류 사실을 불과 1년 반 전 통일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고 이후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걸로만 알았던 터였다. 그는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을 만큼 믿기 어려웠다”며 “그 후 일주일간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이미 10년 전의 일이었다.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 북한대사관 앞 시위 현장을 찾았다. 매주 목요일 납북된 선교사들의 석방을 촉구해온 게르다 에를리히 여사를 직접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세 송이 물망초 배지’를 달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럽의회, 국제 인권단체에도 편지를 보내며 아버지를 비롯한 세 선교사의 석방을 호소하고 있다.
최씨는 “오토 웜비어는 기억하는데 한국 선교사 세 분의 이름은 모르는 분이 많다”며 “북한에서도 외부 소식이 억류자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된다고 들었다. 국민의 기억과 목소리가 세 분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현재 북한에는 이들 세 선교사 외에 북한이탈주민 출신 선교사 김원호 고현철 함진우씨 등 모두 6명의 한국인이 억류돼 있다. 최씨는 새 정부를 향해 “‘국민 생명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만큼 정치 논리를 떠나 억류 국민의 송환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선교사도 “이들이 더 이상 잊혀진 이름이 되어선 안 된다”며 “한국교회도 끝까지 기억하며 기도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수연 김동규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