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기술전쟁은 인재전쟁이다

입력 2025-06-24 00:38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한창이다.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첨단기술을 선도하느냐 여부는 개별 산업을 넘어 한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절박한 문제가 됐다. 그리고 AI 시대 준비에 있어서도 핵심축은 인재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두뇌 쟁탈전’에 뛰어든 이유다. “기술전쟁은 곧 인재전쟁이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이렇게 단언했다.

약육강식의 기술 정글에서도 ‘과학 굴기’를 내건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글로벌 과학 연구 역량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 2025’ 순위에서 중국 대학·연구소는 ‘톱 10’ 중 1위를 비롯해 8개 자리를 차지했다. 네이처가 해당 분야 순위를 처음으로 발표한 2016년만 해도 베이징대 1곳만 이름을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전 속도가 두려울 정도다.

기초과학 분야만이 아니다. 지난 1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는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R1’을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노골적 견제를 뚫고 이제 중국이 미국과 함께 AI 기술패권의 양대 산맥 중 하나임을 선포하는 장면이었다. 외부에서는 ‘딥시크 쇼크’라고 술렁였지만, AI 업계에서는 쇼크가 아니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국가 주도의 AI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전개하며 이미 굴기할 태세를 갖춰왔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천인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고액의 연봉과 주택·연구비를 제공하며 세계 정상급 학자와 교수 1000명을 불러 모으는 해외 인재 유치 사업을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자국 젊은 과학자와 응용기술 인력까지 포괄하는 ‘만인 계획’으로 육성 범위를 넓혔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려스럽게도 반대로 가고 있다. 어렵게 길러낸 인재는 한국을 떠나고, 해외 고급 인력은 외면하면서 AI 경쟁 무대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처지 아닌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 AI 인재의 순유출입은 인구 1만명당 -0.36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2021년까지만 해도 인재 유입국이었으나 2022년 이후 순유출국으로 전환됐다. 미국 등 AI 강국들에 두뇌를 공급하는 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연평균 3만명가량의 이공계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실정이다.

이런 인재들의 탈(脫)한국 기류는 국가 연구·개발(R&D) 경쟁력과 기술 주권을 약화하는 결과를 부르게 된다. “유능할수록 한국을 떠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SGI의 분석은 더욱 서글프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3대 강국’ 실현을 목표로 100조원 규모 AI 인프라 투자 등 AI 산업 육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정했다. AI 시대 준비가 경제 회복과 미래 국가경쟁력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지지대이자 최후의 보루도 결국 인재다. ‘AI 고속도로’ 같은 인프라 구축도, 기반 기술인 AI를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는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최근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이공계 지원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초·중등생부터 고경력 과학기술자까지 촘촘히 인재를 키우고, 악화된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이 대통령은 관련 부처에 국내 인재를 지키고 해외 인재를 유치할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제라도 인재 육성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밀려오는 AI 격류에 대한민국이 굳건히 버티며 길을 낼 수 있도록 인적 기반을 다지고 혁신기술 성장을 위한 토양을 조성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할 때다.

지호일 산업1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