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베긴 독트린과 한반도의 선택

입력 2025-06-24 00:33

이스라엘, 이란 핵시설 공습
“적 대량살상무기 막는다”는
그들의 안보 원칙에 따른 것

한반도 상황에 더 중요한 건
미국이 직접 이란 공습한 이유

과거 판단과 달라진 美 행정부
한반도 정책도 변화 가능성
한·미동맹 중요성 더 커졌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핵시설 원자로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 나라는 이란이었다. 1980년 9월 30일 새벽 이란의 F-4E 팬텀 전투기 4대가 이라크로 날아가 바그다드 남동쪽 투와이타 핵 연구센터의 오시라크 원자로 등을 공습했다. 공격은 완벽하지 않았고, 이라크의 피해는 3개월가량 해당 시설의 운용이 중단되는 정도에 그쳤다. 이란이 방사능 물질 유출을 우려해 원심분리기와 통제·연구실 구역만 파괴했기 때문이다. 원자로를 공습한 건 이란이었지만 배후엔 이스라엘이 있었다. 공습 8일 전 이라크의 기습 침공으로 갑작스레 전쟁을 맞닥뜨린 이란은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폭탄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자 원자로 공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란을 활용해 오시라크 원전을 파괴하려던 계획이 빗나가자 이스라엘은 직접 나섰다. 서구 및 주변국 등과의 외교 파탄을 우려한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군사행동을 택했다. 1981년 6월 7일 F-16 전투기 8대와 F-15 전폭기 6대가 동원된 ‘오페라 작전’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라크 오시라크 핵시설을 재가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국제사회가 일제히 이스라엘을 비판했지만 이틀 후 기자회견에 나선 베긴 총리는 “우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을 선택했다. 우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그는 “미래 모든 이스라엘 총리도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 강조했고 이러한 ‘예방전쟁’식 안보 정책은 ‘베긴 독트린’이라 불리게 됐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에도 시리아의 알키바르 원자로를 공습해 파괴했다. 당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부시 독트린’을 통해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거나 정치적 개입을 통해 반미 성향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시리아 공습에는 소극적이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다행스럽게 국제사회의 비난도 이라크 원전 공격 때보다 약했다. 시리아 정권이 시아파 정치세력으로 이란과 가깝고, 수니파 국가들인 대다수 중동국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습에 주변 아랍국의 반발이 거의 없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적이 이스라엘 민족을 해칠 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베긴 독트린은 국민 감정을 고양시키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해 핵무장이나 공습을 거론하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베긴 독트린류의 정책이 실행되기는 어렵다. 국제사회의 문제아 취급을 받는 북한이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던 때의 이라크·시리아나 현재의 이란과는 다르다. 러시아와 중국 등 인접거리에 있는 강대국들이 우방이기 때문이다. 원전 파괴 시 방사능 피해가 남북은 물론 주변국에도 미칠 수 있고 휴전선 부근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래식 화력이 밀집돼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정거리 안에 수천만명의 인구가 있어 예방전쟁이 아니라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의 이란 공습이다. 우리에겐 베긴 독트린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 내의 부시 독트린 영향력이 더 중요하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이란 핵시설 공격 후 “미국은 전쟁을 추구하지 않지만 우리 국민과 파트너, 우리의 이익이 위협받을 때 단호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부시 독트린의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1960년대 이란의 첫 원자로를 지원했던 미국이 오래 전부터 반미국가를 표방했던 이란의 핵시설을 이 시점에 직접 공습한 이유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내에서 이뤄진 판단이라고 믿지만 과거 미국 정부의 결정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 정책에서도 과거 미국 행정부와 결이 다른 결정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외교·안보 전략에서 한·미동맹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지금은 중요성이 더 커진 듯하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익이 대한민국의 이익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미국 측에 강조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정승훈 논설위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