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에 간 망가져 간 이식했는데… 수술 후 다시 술을?

입력 2025-06-24 02:20
게티이미지뱅크

뇌사자 간 이식10명 중 4명 알코올성 간질환자
생체 간 이식 보다 재음주 비율 높아
국가 차원 표준화 관리 시스템 함께
환자·보호자 인식 개선도 필요

근래 국내 간 이식에서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 뇌사자 간 이식 환자 10명 중 4명이 알코올성 간질환자다.

과거 간질환의 주요 원인이었던 B형 간염이 백신의 보급으로 점차 감소하고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간질환이 급증하는 추세와 무관치 않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중독 수준의 잦은 음주로 간경화 말기에 이르거나 일시적 폭음에 따른 급성 알코올성 간염 등으로 심한 간 손상이 생겼을 때 이뤄진다. 이런 알코올성 간 이식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국내엔 이식 전후 금주 및 중독 치료 등 전반적인 관리 체계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국내 의료기관에선 이식 전 금주가 필수사항이 아니다. 이식 후 알코올 중독 치료 참여 규정도 없다. 이 때문에 간 이식을 받고 다시 술을 마셔 이식된 간의 상태가 나빠지고 재이식 위험을 키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뇌사자 이식에서 기증 장기는 공공재로 인식되는데, 공공 자원의 낭비를 막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관리 시스템 마련과 함께 환자·보호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코올성 간 이식 급증하는데…

23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간이식학회에 따르면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간 이식(생체, 뇌사자 포함)은 2009년 72건에서 2022년 295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특히 뇌사자 간 이식에서 알코올성 간질환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로 가장 높다. 문제는 뇌사자 간 이식 후 다시 음주할 위험이 생체 간 이식보다 높다는 점이다. 2021년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국내 연구를 보면 간 이식 후 3년 시점에 재음주 비율은 생체 간 이식(13.9%)보다 뇌사자 간 이식(31.7%)이 2.3배 높았다.

정동환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주로 가족 사이 기증이 이뤄지는 생체 이식은 가족 간의 정서와 지지로 이식 후 술을 마시는 경우는 적다. 반면 뇌사자 기증을 받은 경우 상대적으로 죄책감을 덜 느껴 재음주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유럽에서는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간 이식에 대해 엄격하고 표준화된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식 전에는 최소 6개월 이상 금주와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하고 사회적 지지 체계와 정신건강 상태를 정밀하게 평가한다. 이식 후에는 의료진, 사회복지사, 중독 전문가가 함께 하는 다학제적 시스템을 통해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이런 체계는 환자의 장기 생존율을 높이고 재이식 가능성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식 전 금주 확인이나 중독 치료 참여 규정이 병원마다 다르고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관리 프로토콜은 없다. 이식 후 관리 역시 체계화돼 있지 않아 환자의 음주 재발률이 최대 49%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간이식학회에 따르면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간 이식 전 6개월 이상 금주 등 건강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금주를 지킨 환자는 이식 후 음주 재개 위험이 낮다. 일부 환자는 금주만으로 간 기능이 회복돼 이식이 불필요할 수도 있다. 또 공공 장기를 제공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사회적 신뢰 확보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반면 이식 후 음주 재개는 이식 간의 손상, 면역억제제 부작용 악화, 순응도 저하 등으로 이어져 재이식 위험을 높인다. 정 교수는 “뇌사자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재다. 개인이 술을 다시 마시고 간이 나빠지는 것은 공공재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만성적인 뇌질환이라는 인식과 함께 중독 치료가 필요한데, 환자들이 잘 따르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환자의 순응도가 떨어지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료를 꺼리거나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가 차원 관심과 지원 시급

간 이식 환자의 음주 재발 방지, 이식 장기 보호, 생존율 향상, 사회복귀 지원 등을 위해 국내에서도 다학제적 접근이 절실하다고 학회는 강조한다. 이식 외과 및 내과 의료진은 이식 간 기능의 모니터링 및 합병증 대응, 정신건강의학과는 이식 전후 알코올 중독 평가와 우울·불안 관리, 간이식코디네이터는 약물 순응도 확인과 외래 추적 관리, 영양사·간호사는 식이·음주습관 교육 및 생활지침 제공, 사회복지사는 가족 갈등 중재와 경제적 문제 조정 등을 맡는 식이다.

학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중독정신의학회, 보건복지부 산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협력해 알코올성 간질환자 간 이식 표준화 프로토콜 개발을 추진 중이다. 2023년 3월부터 전남대병원 장기이식센터와 광주 동구중독관리센터에서 함께 ‘My liver 수호대’라는 이름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이식 전 3개월간 금주 프로그램 이수 및 주 1회 중독관리센터 방문, 금단 증상 치료 병행, 이식 후 1년간 모니터링 등을 포함한다.

지난해 발표된 사업 결과(17명 등록해 9명 최종 수료), 사전 사후 긍정적 효과가 확인됐으나 기관 간 소통이나 참여자 유도의 어려움, 회복 후 생업 시작으로 프로그램 지속 참여의 한계 등 개선점도 인지됐다. 서울 대형병원으로 시범사업의 확산을 꾀하고 있으나 시행 여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인력이나 재정적 제약으로 의사와 중독관리센터 등의 협력만으로는 시스템 구축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알코올성 간질환자 간 이식 관리를 위한 국가 표준 프로토콜 마련, 중독 치료와 재발 방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인력·예산 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 및 교육 캠페인의 추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알코올성 간 이식 환자의 대상 선정 기준이 병원마다 달라 치료 접근과 관리 체계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만큼 이식 적합성 판정을 위한 표준화된 기준 마련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또 “알코올성 간 이식 환자의 중독 회복 경로를 장기적으로 연계 모니터링할 인력이 현장에 부족한 만큼 이를 전담할 코디네이터 배치와 적절한 보상 체계(수가 신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