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새벽 미국이 이란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시설을 전격 공습했다. 역사상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하고 이스라엘과 중동, 나아가 전 세계의 안전을 위한 필수 조치였다고 했다. 특히 미국 군사력만이 파괴할 수 있는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인 포르도 시설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싫어하고 중동 개입은 재앙이라던 그가 ‘힘을 통한 평화’가 이뤄졌다고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개입을 전폭적으로 환영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역사적인 공습 덕분에 자유세계가 이란의 테러로부터 보호받게 됐다고 칭송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마침내 이스라엘-이란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에 전례 없는 수준의 선제공격을 감행해 핵 인프라, 탄도미사일 시설, 군 수뇌부와 핵무기 개발 과학자 그룹을 타격하고 방공망, 지휘 통제망을 마비시켰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 개발 의혹이 본격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군사적 대응을 전략적 옵션으로 고려해 왔다. 그러다 선제공격 하루 전인 지난 12일 국제원자력기구가 20년 만에 이란의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나아가 이란의 무장 프락시(대리 세력) 연대인 ‘저항의 축’이 빠르게 약화하는 타이밍도 활용해야 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새로운 질서’ 작전으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가자의 하마스 수뇌부가 제거되고 조직은 궤멸 상태에 빠졌다. 같은 해 12월엔 친이란 성향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마저 갑작스럽게 몰락했다. 이스라엘엔 그야말로 ‘기회의 창’이 열린 순간이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이 유엔헌장 2조 4항을 위반한 불법적 침략 행위라며 이란의 어떠한 대응도 국제법상 정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강조한다. 또한 포르도 핵시설은 지상부만 피해를 봤고 핵 원료는 이미 옮겨졌기에 핵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복 경고도 잊지 않았다. 실제로 미 공습 직후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수십 기를 발사했다. 반미·반이스라엘 이데올로기를 체제 정통성의 핵심으로 삼는 이란의 강경파 집권층에게 예상 가능한 반응이다. 정권 내부 결집을 위해서도 체제의 견고함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란의 지배 엘리트는 정권 생존을 위한 치밀한 손익계산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군 핵심 인사 20여명이 사망한 데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여전히 이란 영공에서 거리낌 없이 작전을 수행 중이며 이스라엘 모사드가 개입한 내부 정보 유출까지 겹치면서 정권 내부는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방공 사이렌이나 대피 안내조차 내보내지 못한 정권의 무능함에 민심이 들끓어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 외교부는 유럽, 걸프 산유국의 외교관들과 긴박하게 접촉하며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란이 보복을 천명한 이상 미국의 핵시설 타격에 대한 응징의 제스처는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이란 프락시 연대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태로 일부 조직이 역내 미군 기지를 겨냥한 제한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미국에 타격을 가하면서 보복했다는 명분을 얻고 전황을 소강상태로 만들 것이다. 이후 이란은 정권 생존을 위해 미국과의 협상 재개를 전략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도 이란을 공격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를 추구한다. 이란은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한 만큼 현재로선 양측 모두 협상의 길을 택하는 수순으로 돌입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