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60년대 후반 수출주도 성장을 경제발전 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지금껏 유지시켜 왔다. 개발연대(開發年代) 당시 해외원조와 외채 등을 통해 들여온 한정된 자본을 철강 등 전략산업에 집중시키는 정책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였다. 때마침 글로벌 고성장에 따른 해외 수요 확대는 수출 활성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달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
하지만 이러한 수출 중심의 성장전략이 앞으로도 유효할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크게 보면 교역환경 악화와 중국의 위협이 핵심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퇴보와 보호무역 확산으로 세계 교역의 신장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까지 세계 교역금액의 연평균 증가율은 14.6%인 데 반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증가율은 2.7%로 뚝 떨어졌다. 아울러 중국은 그간 대규모 투자와 기술개발 성과로 한국의 수출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인협회가 한국과 중국의 첨단산업 수출경쟁력을 비교한 결과 모빌리티, 기계, 화학 등 한국의 주력산업은 이미 2022년부터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악화되는 교역 환경과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구도로 인해 수출은 추세적으로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가 앞으로도 수출에만 의존할 경우 저성장 늪에서 헤어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취약한 내수기반을 확충해 수출 둔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도록 해야 한다.
내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긴요하다. 서비스업은 그동안 수출주도 성장전략에 따라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대접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2023년 기준 연구·개발(R&D) 세액공제의 업종별 비중을 보면 제조업은 85.5%인 데 반해 서비스업은 12.6%에 불과하다. 창업기업에 대한 부담금도 서비스업에만 적용된다. 이처럼 차별적인 세제혜택이나 금융지원 시스템 등을 제조업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해야만 서비스업의 투자유인이 촉진돼 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다. 서비스업의 체계적인 육성기반 마련을 위해 장기간 국회에 표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의 조속한 통과도 요구된다.
소비자들의 잠재적 수요가 큰 분야로서 내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전도유망한 산업을 발굴·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관광업이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추세로 국민의 여가활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K컬처를 활용한 해외관광객의 대규모 유입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광업은 특히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지원·육성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토지이용 규제 완화, 관광인프라와 지역별 특색 있는 상품 확충 등으로 관광업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내수산업 신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수산업의 수요 기반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인구 감소는 내수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출산율 제고와 이민 유입 확대 등을 통해 인구 감소 속도를 최대한 늦춰나갈 필요가 있다. 사회안전망과 노후보장 강화 등 국민의 소비심리 안정을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저성장이라는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다. 하지만 내수와 수출의 쌍끌이형 성장방정식을 만들어간다면 우리는 능히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골디락스의 날개를 펼쳐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