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서 30㎞가량 떨어진 탕에랑 시타날라 마을에는 한센인들이 모여 산다. 1951년부터 형성된 이 마을에는 1400여명의 한센인이 거주한다. 이중 300여명은 완치됐지만, 차별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대부분 주민이 구걸하거나 인력거를 끄는 등 힘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최근 찾아간 마을은 고급 호텔이 즐비한 자카르타와 가깝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좁은 흙길을 굽이굽이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쓰러질 듯한 집과 구멍가게들이 촘촘히 붙어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차올랐다. 오전에도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높은 습도까지 겹쳐 거리에 인적이 드문데 유독 한 곳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유일의 현대식 건물인 이곳은 한센인 자녀들이 다니는 ‘꿈나무유치원(3)’이다.
한센인 자녀 위한 꿈터
꿈나무유치원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운 한센인 자녀들을 위해 김재봉(65) 김정순(64) 선교사 부부가 2006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필품과 장학금을 나눠주던 사역이 공부방으로, 유치원으로 확대돼 현재는 66명의 어린이가 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유치원에는 두 개의 교실과 놀이방 겸용으로 사용하는 널찍한 거실이 있다.
교실에서 고사리손으로 글씨를 쓰던 세티안노(6)는 어떤 과목이 제일 재미있냐는 질문에 수줍게 “역사”라고 답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놀이방에서 노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놀이방은 한국의 교회와 후원자들이 보내온 책과 장난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아직 공사 중인 유치원 옆 공터는 마을 주민들도 사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했다.
김재봉 선교사는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이다 보니 교육과 봉사 등 간접적인 선교를 하고 있는데 교육 사역조차 반대하거나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주민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유치원도 이웃과 공유하고 장학금도 한센인뿐 아니라 비한센인 주민 자녀까지 확대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중고 이어 기독대학 설립 목표
유치원 뒤에 붙은 숫자 ‘3’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유치원은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김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에 일하러 온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위한 유치원(1)’을 2000년에, ‘한인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2)’을 2003년에 각각 세웠다. 이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차례로 탕에랑에 들어섰다.
김 선교사는 “1997년 땅그랑교민교회를 개척하면서 지역 사회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탕에랑은 한국의 구로공단 같은 공장 밀집 지역으로 국제결혼 가정이 많아 2세를 위한 교육을 먼저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초·중·고교를 잇달아 세운 것도 학부모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현재 540여명의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꿈나무’ 그늘 아래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졸업생은 1000여명에 달한다. 고등학교 졸업생 중 3명은 한인교회 도움으로 현재 충북 청주대에서 유학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각 분야 리더가 돼 인도네시아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앞으로는 기독대학을 설립해 선교영어와 기독교교육 종교음악 등 각 분야에 특화된 기독교 사역자를 키우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인교회와 현지인 협력에 보람
올해로 파송 30주년을 맞은 김 선교사의 모든 사역은 땅그랑교민교회 성도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 현지 성결교회와 협력해 교회 12곳도 개척했고 미자립교회 지원이나 방과 후 교실 등 다양한 사역을 진행 중이다. 성도들은 자신들도 이주민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지인과 협력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 현지 회사 법인장을 하다 은퇴한 김대일 장로 부부는 재능기부로 학교 교장을 맡아 학생들과 동고동락한다. 최근 한 성도는 1억8000만원을 헌금해 교회 4곳 개척도 준비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선교 사역과 목회를 함께 하다 보니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선교지에 있는 교회는 현지인을 위해 사역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사도 바울이 어느 곳에 가든지 회당을 중심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땅그랑교민교회가 지역 복음화를 위한 나들목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재봉 선교사는
인니 진출 한국 기업 사목으로 섬기려다 좌절… 되레 전화위복
인니 진출 한국 기업 사목으로 섬기려다 좌절… 되레 전화위복
김재봉(오른쪽) 선교사가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 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직원을 섬기기 위해서였다. 충남대 화학교육과와 서울신학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 선교사는 선교사로 소명을 받은 후 아프리카에 가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한국도자기가 인도네시아 공장인 '젠한국'을 세우면서 주재원과 현지에 사는 한국인을 섬기는 사목을 제안했다.
김 선교사는 "대학생 시절 꿈에 하나님께서 얼굴이 까만 사람들을 보여주셔서 아프리카에 가야 하는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을 보고 '이곳이었구나' 깨달았다"며 웃었다.
1995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자카르타에 왔는데 현지 상황이 예상치 않게 돌아갔다. 인도네시아 회사 내 선교활동에 큰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역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으니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었다”면서 “파송 사역 대상에 한인 회사 주재원이 포함됐기이 한인 밀집 지역 중 하나인 탕에랑에서 목회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97년 한 대학교 강의실에서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땅그랑교민교회를 개척했다. 그런데 끊어진 줄 알았던 젠한국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됐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강의실 하나만 쓰던 것이 두 개가 되고 예배당 건축까지 해야 할 시기가 됐어요. 젠한국 회장 김성수 장로님이 제가 사목을 하지 못했던 것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계셨던 것 같아요. 지금의 교회를 지을 때 필요한 땅과 건축비를 지원해 주셨어요. 재정 지원도 필요한 금액의 49%까지 해주셨는데 이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와 한국 기업의 협력은 이어졌다. 꿈나무학교가 성장해 두 차례 증축해야 할 때도 젠한국이 재정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교회와 학교에 투자한 금액이 16억원 이상이다. 그뿐 아니라 학업 우수 학생과 빈곤 학생, 꿈나무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유학 간 학생에게 장학금도 후원하고 있다. 김 장로는 꿈나무학교 졸업식 때마다 인도네시아를 찾아와 학생들을 격려한다. 김 선교사는 "기업이 진출한 곳을 선교지로 삼고 현지 선교사와 동역하는 사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사례를 따라 현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땅그랑교민교회 성도와 함께 현지는 물론 한인 사회에서 '복음의 디딤돌'이 되는 게 사역의 남은 목표다. 그는 "지금까지 사역할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은혜였다"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충성을 다하는 '흩어진 증인'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탕에랑(인도네시아)=글 ·사진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