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반찬 배달… “외로운 홀몸 어르신들 안부 살펴요”

입력 2025-06-24 03:05
구지영 매일유업 성동·광진 대리점장이 지난 18일 서울 성동구의 매일유업 대리점 앞에서 우유 배달에 나서고 있다.

‘1인 가구 전성시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한 집 걸러 한 집이 혼자 산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약 42%가 1인 가구다. 홀로 지내는 일상은 외로움을 넘어 특히 고령자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기에 교류하는 이가 없고, 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에 처한 어르신 곁에서 오랫동안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작은 관심이 어르신들의 일상을 지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유로 확인하는 생명 신호

“다행이다. 오늘도 우유가 없어.”

지난 18일 오전 6시 서울 성동구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현관문 앞. 구지영 매일유업 성동·광진 대리점장이 대문에 걸린 보라색 보냉백을 흔들며 안도했다. 그러곤 새 우유 하나를 채워놓았다. 우유갑엔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새벽 산책을 마친 김용남(90) 할머니가 구 점장을 발견하고 그를 불러 세웠다. “매일같이 배달해주니 젊은 양반한테 참 미안하네. 그래도 고마워. 그 덕에 내가 이만큼 살고 있지.”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김 할머니가 받는 우유는 홀몸 어르신들의 고독사 예방을 위해 무료로 배달되는 우유다.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사장 호용한 목사)이 사업을 주관하고, 매일유업도 후원하고 있다. 고독사 예방은 배달했던 우유가 쌓여 있으면 어르신들께 연락을 드려 안부를 묻는 식으로 진행된다. 구 점장은 “우유가 그대로 놓여 있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어 코를 대고 냄새까지 맡아본 적도 있다”고 했다.

우유 배달의 시작은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가 저소득층 독거노인 100가구에 교회 이름으로 우유를 전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 목사는 2015년 지금의 사단법인을 설립했고, 기업과 개인 후원을 통해 복지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달 기준 우유를 배달받는 전국의 홀몸 어르신은 6024가구. 한 달간 전달되는 우유만 18만1321개에 달한다.

말없이 배달로만 묻는 안부에도 어르신들은 따뜻한 돌봄을 느끼고 있다. 배달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어르신들이 보냉백에 손편지, 사탕을 남겨 두거나 겨울엔 귀마개나 장갑을 넣어두기도 한다. 매일유업 성동·광진 대리점의 한 배달원이 지난달 받은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과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노인들의 안녕을 빌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 카네이션까지 담아 주셔서 감동이었어요. 혼자 살면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지만, 여러분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잘 극복하려 노력합니다.”

호 목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며 “5000원, 1만원씩 꾸준히 후원하는 분들의 정성이 모여 기적 같은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주 찾아가는 반찬 안부
홀몸 어르신들에게 전할 반찬을 포장하는 미션앤컬처 자원봉사자들.

같은 날 오전 9시 서울 관악구의 한 상가 2층. ㈔미션앤컬처(대표 이현걸 목사)와 하우림교회 현판이 나란히 걸린 이곳에선 홀몸 어르신을 위한 반찬 배달이 한창이었다. 돼지고기를 가득 담은 45ℓ 대형 솥 2개에선 1시간 만에 장조림 300인분이 나왔고, 그 사이 자원봉사자는 배추김치와 무말랭이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냈다. 한 자원봉사자는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드물기에 고기반찬은 꼭 준비한다”며 “장조림과 불고기를 매주 번갈아 가면서 만든다”고 했다.

미션앤컬처는 매주 수요일마다 홀몸 어르신 100가구에 반찬을 배달한다. 이날은 파스와 아침 식사용 차 등 어르신 생신 선물까지 준비했다. 자원봉사자 20여명은 각자 가져온 보온가방과 쇼핑카트에 3가지 반찬과 선물, 롤케이크를 싣고 10시30분쯤 배달에 나섰다.

이현걸 목사와 자원봉사자 김현순씨는 김옥란(가명·85)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붉은색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허름한 단층집. 건물 옆에선 벽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고, 위로는 전선과 통신선이 미로처럼 엉켜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곰팡내가 훅 밀려왔다. 방은 성인 한 명이 편히 누울 공간조차 없어 보이는 비좁아 보였다. 천장에 달린 일자등엔 거미줄이 쳐 있었고, 방을 밝힐 조명은 손바닥보다 작은 백열전구 하나뿐이었다. 할머니는 7년 전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9년째 홀로 살고 있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이건 이번 주 반찬. 꼭꼭 씹어 잡수세요.” 이 목사와 김씨가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건넸다. 할머니는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했다.

미션앤컬처는 2009년부터 지역 홀몸 어르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배달로 반찬을 전하고 있다. 생일 케이크와 선물은 2018년부터 매달 배달하다가 올해부턴 예산 문제로 반기에 한 번만 하고 있다.

이 목사는 “반찬 배달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해드리는 게 아니라 어르신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일”이라며 “일주일에 한 번 배달갈 때마다 일상적인 대화도 나눈다”고 했다. 이어 “작은 관심과 정성이 모여 외로운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지켜내고 있다”며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주변의 홀몸 어르신을 돌보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