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의 자동차산업에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 만들고 소비하라’는 기조가 확산하면서 미국 내 생산 차량이 수출보다 내수용으로 돌려지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완성차업계의 대미 투자도 증가했다. 반면 대미 수출은 난관에 봉착하며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2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에서 생산해 미국 밖으로 수출한 차량은 단 14대에 그쳤다. 전년 동월(1303대) 대비 98.9%, 전월(2386대) 대비 99.4% 급감한 수치다. 급전직하한 수준이다. 이 공장의 월간 수출량이 10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HMMA에서 총 2만2600대를 수출하며 5년 만에 최대 실적을 냈던 점과 대비된다.
수출 급감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수입차 25% 관세 부과 방침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현대차의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미국에 63만7000여대를 수출한 현대차는 관세 부담을 피하고자 미국 공장 생산 차량을 현지에서 판매하거나 재고로 쌓아두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재고도 이달 중으로 소진될 전망이어서 미국 내 판매가격 인상 압박이 커지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북미 공장의 생산과 수출 계획도 일부 수정했다. 지난 4월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1분기 실적 발표를 하며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되던 미국향 투싼을 HMMA로 돌리고, HMMA에서 생산하던 캐나다 판매 물량은 멕시코에서 생산해 캐나다로 넘기는 것을 시행 중”이라고 밝혔었다. 기아 멕시코 공장에서 출고된 투싼은 지난 2월 2109대에서 3월 522대로 급감했고 이후 출고가 중단됐다.
미국과 캐나다 간 관세 전쟁도 현대차의 미국발 수출 감소를 부추겼다. 캐나다는 지난 4월 초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산 자동차에 25% ‘맞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HMMA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캐나다 수출이 가격 경쟁력에서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현대차뿐 아니라 미국 완성차 업체들도 미국 내 생산 확대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는 뉴욕·인디애나·오하이오 등 미국 내 주요 공장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량을 늘리고, 멕시코에서 생산하던 일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을 미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캐나다 공장들은 축소 또는 감원 움직임을 보인다. 포드와 스텔란티스도 해외 생산을 줄이고 미국 내 생산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비(非)미국 완성차 브랜드들도 미국 생산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폭스바겐은 미국 채터누가 공장 확장을 검토하고 있고, 벤츠는 앨라배마 공장에 신형 모델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 BMW 역시 내년부터 스파턴버그 공장의 생산 규모를 확대한다. 아우디도 미국 생산을 위한 부지 선정에 나섰다.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