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2010년 스턱스넷, 2025년 벙커버스터

입력 2025-06-23 00:40

컴퓨터 바이러스의 용량은 보통 10kb 정도인데, 2010년 500kb짜리 아주 복잡한 놈이 출현했다. 독일 지멘스의 산업용 전자제어시스템을 골라 파괴토록 설계된 이 악성코드는 주로 중동에서 컴퓨터 20만대와 기계 1000여대를 망가뜨렸다. 대표적인 것이 원심분리기였다. 이란이 우라늄을 농축하던 원심분리기의 20%가 무력화됐다. 금수조치 때문에 지멘스 시스템을 밀수한 터라 컴퓨터 보안이 허술했던 이란 핵시설을 타깃 삼아 유포된 것이다.

‘스턱스넷’이란 이름의 악성코드는 몇 년 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합작품으로 밝혀졌다. 부시 행정부에서 개발하다 2009년 이란의 포르도 비밀 핵시설이 드러나자 오바마 행정부에서 실행에 옮긴 사이버 공격이었다. 목적은 핵개발을 지연시켜 시간을 버는 거였다고 한다. 그 시간을 활용해 오바마는 2015년 이란과 핵합의를 타결했는데, 오래 가지 못했다. 이란의 숨겨진 핵 프로그램이라며 이스라엘이 캐낸 정보를 듣고 2018년 이를 파기했던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를 맞아 결국 B-2 폭격기 출격 명령을 내렸다.

스턱스넷이 벙커버스터로 바뀌는 데 15년이 걸렸다. 핵개발을 방해한 사이버공격 이후 숱한 회담이 열렸고 돌파구를 찾기도 했지만, 우리가 북핵 사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듯이 핵무기를 둘러싼 협상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어서 핵시설을 파괴하는 전쟁을 끝내 피하지 못했다. 핵개발을 무력으로 저지하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이란의 첫 원자로는 친서방 노선의 팔레비 왕조를 지원하던 미국이 1960년대 에너지 협력 차원에서 지어줬다. 그것이 핵무기 개발로 변질된 배경에는 국제적 고립이 있었다. 신정국가 수립, 이라크와의 전쟁을 거치며 서방에도, 아랍에도 우군이 없는 상황에 놓인 이란은 핵을 통해 힘을 얻는 길을 택하게 됐다. 이란보다 더 고립된 채, 더 오랜 기간 가공할 무기를 갈구해온 북한은 지금 이란보다 훨씬 위험한 수준의 핵을 갖고 있다. B-2 폭격기가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북한이 떠올라 더 섬찟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