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부, 해수부까지
‘실용주의’ 표방한 李정부
바꿔야 할 이유 납득시켜야
‘실용주의’ 표방한 李정부
바꿔야 할 이유 납득시켜야
새 정부가 조직 개편을 준비 중이다. 최종 개편안은 국정기획위원회 운영 기간인 60일을 감안했을 때 오는 8월 중순쯤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공무원이나 유관기관,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직 개편이 나한테 무슨 영향을 미칠까’가 주요 관심사다.
개편 규모가 작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단 행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부터 손댄다는 얘기가 들린다. 정부 예산 기능을 분리해내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예산을 떼어 낸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으로 분리해 흡수시킨다는 설이 유력하다. 공약에 명시된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이미 정설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를, 환경부에서 기후를 분리해 합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성평등가족부로 명패를 바꿔 단다고 한다. 사법부에선 검찰청을 건드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체’ 수준의 안을 내놓고 있다. 당장 논의 석상에 올라와 있는 구상들만 모아 봐도 5개 부처와 1개 청, 1개 위원회가 사정권이다.
지난 정부 때의 조직 개편안 발표와는 다르다. 윤석열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했지만 거대 야당의 벽에 부딪혀 정부조직법 개정에 실패했다. 이재명정부는 그 거대 야당을 등에 업고 있다. 개편안만 만들어지면 법 개정은 그리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정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정부 조직 개편이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바꾸자”고 하는데 못할 건 없다. 다만 국정기획위 논의와 대통령 보고 과정에서 한 가지만큼은 꼭 짚어본 뒤 결론이 나왔으면 한다. 대규모 정부 조직 개편은 비용이 수반된다. 국민 세금을 들여서까지 바꿀 필요가 있는 건지 납득이 가게끔 설명해주길 바란다.
이런 문제 제기는 행정부가 현 상태로도 대통령 말을 ‘너무’ 잘 듣는 조직이라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인사혁신처가 생긴 2014년은 인상에 남는 시점이다. 이후 인사 고삐를 세게 틀어쥔 대통령의 정부 부처 장악력은 더 세졌다. 관가에서는 이 시점부터 대통령실이 장차관 외에 실장급, 심지어는 국장급 인사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얘기가 들렸다. 막강한 인사권은 ‘영혼 없는 공무원’을 양산했다. 고위직 인사권이 제한된 ‘월급 CEO’ 격인 각 장관들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을 경청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즉 지금도 못 할 건 없다는 얘기다.
물론 돈이 들더라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례로 여가부를 보자. 남성 역차별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라면 기능을 바꾸는 게 합당해 보인다. 뭔가 바꿀 명분이 있는 셈이다. 기재부 예산 기능 분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직접 예산을 챙기기 위해 지근거리에 예산을 두고 싶다면 이 역시 나쁘지 않아 보이는 설명이다.
하지만 스스로 해석을 해보려 해도 설명이 부족한 사례들은 부연이 있어야 할 거 같다. 기후에너지부의 경우 필요성을 납득하기가 힘들다. 산업부가 대통령 뜻을 거스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왜 굳이 이 부를 신설해야 탄소중립이 되는 건지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환경부에서 ‘기후’를 떼어 내면 환경부가 부로 존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부 조직 개편은 아니지만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도 그렇다. 정치적 명분은 이해가 가지만 비용이 너무 드는 건 아닌가. 중앙부처 공무원은 특성상 부처 간 협의가 많다. 게다가 국회의원실은 수시로 여의도로 중앙부처 공무원을 불러들인다. 이전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많은 출장비를 감당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갸웃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자라는 평가가 높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위치상 실용과 정치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직 개편도 2개의 가치가 충돌하는 일 중 하나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비판의 명분이 될 수도, ‘엄지 척’을 할 일이 될 수도 있다. 부디 ‘최적의 선택’을 하길 바란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