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틀 전인 지난 1일 오전 1시12분 전남 진도항 선착장 너머로 일가족이 탄 승용차 한 대가 추락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부부가 의도한 비극이었다. 자녀들은 영양제라며 부모가 건넨 음료를 마셨는데, 그 안에 수면제가 들어 있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지만, 여기에는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선 안 될 사회의 여러 그늘도 드리워져 있다.
건설 현장 팀장이던 남편은 경기 침체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고, 데리고 있던 인부들에게 3000만원가량의 임금을 주지 못했다. 당국은 체불임금 조사로 압박해 왔다고 한다. 아내는 우울증을 앓았고, 자신은 카드로 대출을 돌려막으며 버티다 빚이 2억원 가까이까지 불어났다. 사건은 돈을 받지 못한 인부들의 고초까지는 드러내지 못했다.
몇 년 전 탐사팀에서 일하며 비슷한 사건 191건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각 사연은 다양했고, 원인은 복합적이었지만 가해자들은 대체로 빈곤(60건), 채무(58건), 사업실패(29건) 등 ‘살길이 막막했다’는 절박감을 공통으로 언급했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대부분은 사회 시스템이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잃은 상태였다.
실물 경제의 충격은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린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은 이미 추락하던 한국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렸다. 지난 1분기 서울시 커피·음료업의 폐업률은 4.0%로 개업률(3.1%)을 웃돌았다. 문을 닫은 곳이 새로 시작한 곳을 앞지른 건 10년 만에 처음이다. 같은 기간 경기도 음식점업 폐업률(2.85%)도 개업률(2.49%)을 6년 만에 앞질렀다. 지난 1분기 중소벤처기업부 원스톱 폐업지원 신청 건수는 2만37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었다. 절망의 깊이를 숫자로만 겨우 가늠할 뿐 무너진 간판 뒤에 감춰진 각자의 고된 사연은 짐작조차 힘들다.
한국갤럽의 6월 2주 차 조사에서 이재명정부에 바라는 점 1위는 경제 회복과 활성화였다. 서민정책과 복지 확대가 그 뒤를 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향후 5년 직무수행 기대치는 70%로 대선 득표율(49.42%)을 훨씬 웃돌았는데, 여기에는 계엄으로 경제를 파탄 낸 세력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도 녹아 있다고 본다.
허니문은 정권의 가장 짧은 순간이다. 57%의 지지율로 출발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30%대 지지율로 내려앉기까지 딱 1년이 걸렸다(갤럽 기준). 47%의 지지율로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반 년도 채 안 돼 30%대 지지율을 목전에 두고 있다. 모두 경제 악화가 핵심 원인이다. 생활 전선에서 경제적 균열이 발생하면 그 어떤 고상한 가치도 뜬구름 잡는 수사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재명정부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약세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 역시 올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르면 다음 달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풀리지만, 대한민국이 맞닥뜨릴 ‘0%대 경제성장률’ 수치를 돌리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많다. 머잖아 그 추경 재정의 청구서도 도착할 것이다. 새 정부는 이 위태로운 숫자들 위에 터 잡고 출범했다.
정치는 결국 민생이고, 지표로 평가받는다. 입법과 행정 권력을 모두 거머쥔 역대 가장 강력한 정부라는 타이틀은 어느 순간 족쇄가 돼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던 절박감을 부디 잊지 마시길 바란다.
전웅빈 정치부 차장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