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오늘의집 “힘 모아 자립준비청년에게 새 집을”

입력 2025-06-22 18:56
리모델링 전 정 씨와 함께 사는 이모할머니의 방 전경. 높은 책장과 쌓인 물건들이 시야를 가린 어수선한 공간. 침대 없이 매일 이부자리를 펴고 접으며 생활해야 했고, 좁은 이동 동선은 낙상 위험까지 안고 있었다. 부산시 제공

곰팡이 핀 책상, 뒤엉킨 가구, 테이프로 붙인 들뜬 장판. 문화재 수리 전문가를 꿈꾸던 20대 자립준비청년 정모씨(25)의 ‘방’은 고단한 자립의 상징이었다.

30년 가까이 된 영구임대주택에서 그의 방은 함께 사는 이모할머니가 TV를 보는 공간이기도 했다. 정씨는 삐걱거리는 책상에 앉아 수험서를 펼쳤다. “방해될까 봐 늘 조용히 움직였어요. 먼지도 많고, 곰팡이 때문인지 목이 칼칼한 날도 많았죠.” 좁고 낡은 공간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앞으로 나가려는 청년의 발걸음을 붙잡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22일 부산시에 따르면 시는 자립준비청년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청년러브:오늘부산’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보호 종료 후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지원하고자 기획됐다. 정씨는 1차 대상자로 선정돼 최근 주거 공간이 새롭게 재정비됐다.

사업은 민·관·NGO 협력 모델로 추진됐다. 시는 자립지원전담기관과 함께 대상자를 발굴했고,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은 공간 설계와 가구·가전 제공 등을 맡았다. 일부 시공비는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충당됐다.

리모델링 이후 정씨의 공간은 완전히 달라졌다. 주방이 재정비되면서 방 안에 놓였던 김치냉장고는 제자리를 찾았고, 거실과 방도 분리됐다. 좌식 생활을 이어가던 책상과 침대는 독립된 구역으로 재배치됐고, 수납과 조명, 책장이 조화를 이루며 정돈된 환경이 조성됐다.

정씨는 “예전엔 이 집이 그냥 잠만 자는 곳이었다면, 지금은 저를 받아주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공간이 바뀌니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니 일상이 달라졌어요.”

시는 2023년 자립준비청년 160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시행한 결과 응답자의 65.7%가 주거비 지원을, 35.6%는 생활환경 개선을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꼽았다. 하승민 시 미디어담당관은 “단순한 벽지 교체를 넘어, 삶을 체감할 수 있는 ‘질적 공간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사업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오늘의집 측은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인테리어 지원을 넘어, 공간이 개인의 삶에 어떤 심리적 전환점을 줄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한 사회공헌의 일환”이라며 “부산시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 사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상시 지원 가능한 모델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현재 2차 대상자 2명을 다음 달 4일까지 모집에 들어갔다.

정씨는 이제 문화재 복원 기술자를 꿈꾸며 국가유산수리기능자 자격증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집에서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